김우중 수사 ‘풀리지 않는 의혹들’

정경유착 검은 고리 풀지 못한 미완의 수사

2006-10-21     권민경 기자

창(검찰) 막아낸 방패(변호인단)의 판정승…짜고친 고스톱?
예보, 자산관리공사 재산환수에 박차…환수 여부 불투명

끈적한 더위가 막 시작되던 지난 6월14일, 5년8개월간의 해외도피생활을 청산하고 김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귀국했다. 워낙에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인천공항을 비롯, 대검 청사 앞에는 취재 차량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대우차 조합원, 민노당 당원 등 100여명은 입국장 앞에서 ‘즉각 구속 사면불갗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김우중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드디어 초췌한 모습의 김 전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고 외쳤던 과거의 그 대단했던 명성을 생각해보면 늙고 지친 표정의 김 전 회장은 모습은 생소하기까지 했다.김 전 회장은 도착 후 “대우사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기 위해 귀국했다.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은 “의혹을 철저히 밝히겠다” 며 강한 수사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사실상의 수사가 종결된 지금 김 전 회장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많은 부분 미완으로 남겨졌다. 80여 일간의 수사를 통해 밝혀낸 것과 풀지 못한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박영수 부장검사는 김 전 회장을 상대로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을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 민유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50일간에 걸쳐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를 할 것”이라며 “구속기소 전 20일간은 분식회계 등 2001년 대우사태 수사 때 드러난 혐의를 조사하고 이후 30일간 대우그룹이 영국 런던에 뒀던 비밀금융조직인 영국금융센터(BFC)를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의 구속영장에 적시된 주요 혐의는 41조 원대 분식회계와 10조 원대 사기대출, 200억 달러의 국외재산도피 등이었지만 이들 혐의 규명은 대우그룹 전직 임직원들이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유죄로 인정된 바 있어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갑작스런 출국과 귀국 배경, 대우그룹의`몸집 불리기'와 비정상적 해체과정, 무엇보다 김 전 회장을 둘러싼 끊임없는 정관계 로비설 등은 DJ 정부 당시 고위관료들의 이름과 얽혀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였다. 법리적으로는 김 전 회장이 정치권에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거나, DJ 정부가 김 전 회장의 범죄사실을 묵인하고 해외로 출국시킨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정치자금법 위반죄나 범인도피죄 등은 공소시효가 지나 관련자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약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나면 공소시효가 남아있어 처벌할 수는 있지만 금품의 대가성을 입증하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대우그룹이 재계 서열 2위의 거대기업이었던 만큼 급속한 몰락 배경을 반드시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6월 29일 "대우그룹이 몰락한 배경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풀고 가야 한다는 것이 김종빈 검찰총장의 의지다.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의혹은 풀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용두사미로 끝난 검찰 수사

그로부터 80여일이 흐른 지난 9월 2일, 김 전 회장에 대한 공식적 수사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이 호언한 만큼의 성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80일동안 무엇을 해느냐” 고 강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수사를 통해 천 억 원대의 횡령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긴 했지만, 정관계 로비 같은 핵심 의혹. 비자금의 규모와 사용처, 출국권유의 실제 배경 등은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진 것

회사자금 횡령- 검찰 수사 결과 김 전 회장이 지난 1983년부터 17년 동안 대우그룹 해외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빼돌린 회사자금은 무려 1억1천 554만달러(1천141억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김 전 회장은 이 돈의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 설립된 회사에 투자하거나 해외 주택 구입비로 쓰는 등 ‘생활비’(?) 로 사용했다. ‘회사는 망해도 오너는 살아 남는다’는 말을 여지없이 입증한 셈이다. 김 전 회장이 횡령한 돈을 가장 많이 쏟아 부은 곳은 ‘퍼시픽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회사로 BFC 자금 4천771만달러(383억원)를 이곳에 투입했다. 이 가운데 3분의 1정도는 김 전 회장의 부인이 운영해온 필코리아라는 부동산 개발회사로 흘러 들어갔다. 퍼시픽 인터내셔널이 부인 정희자가 지분 9%를 소유하고 있는 필코리아의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필코리아는 현재 포천 아도니스골프장, 경주 힐튼호텔, 선재 미술관 등을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회사자금 628만 달러(46억원)로 해외 유명 작가의 고급 미술품 50여 점을 구입했으며 가족을 위한 해외 주택 구입 및 해외체류 경비 등으로 273만 달러(20억원)를 사용했다. 결국 엄청난 회사공금으로 자신의 가족을 챙기는 비도덕적 행위를 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의 회사자금 빼돌리기는 해외도피기간에도 계속돼 2000년 1월 전용비행기를 1천450만 달러에 처분한 뒤 이를 챙겼다. 이와 함께 검찰은 대우그룹이 ㈜성내·SRC 등 16개 위장 계열사(공정거래법 위반)를 운영하고, 대우차의 협력업체 세일·이화㈜ 등 6개 업체에 218억 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업무상 배임)도 추가로 밝혀냈다. 김 전 회장이 대우자동차판매㈜를 통해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1억원, 이재명 전 민주당 의원과, 최기선 전 인천시장에게 각각 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제공한 혐의도 사법처리 대상에 올렸다.

풀지 못한 의혹들

‘모든 국민적 의혹을 밝히겠다’ 큰소리쳤던 검찰,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성과에 대한 말보다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만 높아갔다.

검찰 수사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악재는 김 전 회장의 ‘건강’ 문제였다. 해외도피 때 위암 등 각종 수술을 받은 데다 고질적인 심장질환 있어 귀국 당시에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김 전 회장은 80여일의 수사기간 중 30일 정도를 병원에서 지냈다. 또 다른 문제는 시간이었다. 7∼8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검찰은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다. 구체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다 보니 옛 대우 임직원 등 소환된 관련자들도 모두 입을 맞춘 듯 “김 회장이 알아서 했다”며 진술을 거부해 수사는 갈수록 더디게 진행됐다.결국 지난달 30일 김 전 회장이 수술까지 받게 되자 검찰은 더 이상의 수사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전 회장이 입을 여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수사방법이었으나 그가 입을 다물자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것이다.출국배경- 6개 계열사의 경영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출국했다는 게 김 전 회장의 진술이지만, 경제수석이었던 이기호씨 등이 부인하면서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검찰에서 지난 1999년 10월의 갑작스런 출국에 대해 “당시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과 접촉해 ‘내가 나가야 할 상황이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는 답을 듣고 나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 등은 “전혀 그런 일 없다”고 진술했다. 양측의 상반된 진술에 검찰은 계열사 사장들의 진술에 비춰 출국배경을 “계열사 사장들의 건의 때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재판 과정에서 쟁점으로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대우 해체 직전 정,관계 로비설- 대우 해체 직전의 정관계 로비 의혹도 끝내 미완으로 남게 됐다. 검찰은 “이미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송영길 의원과 이재명 전 의원에 대한 정치자금 공여 혐의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가 해외출국 직전 DJ 측근인 무시 중개상 조풍언에게 송금한 4천430만 달러(약526억원)가 퇴출저지 로비용이었다는 의혹도 규명되지 않았다. 금융권에서는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퇴출 직전 정부 고위층에 로비하기 위해 평소 친분관계에 있었던 조풍언을 이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있어왔다. 그러나 검찰은 조씨의 해외체류 등을 이유로 내사를 중지했다. 박영수 대검중수부장은 “김 전 회장 본인도 ‘빌린 돈을 갚은 것’ 이라며 그러한 부분에 대한 진술을 회피하고 또는 거부하기 때문에 증거 확보가 무척 어렵다” 고 말했다.

재산 환수 가능할까

검찰은 김 전 회장의 해외은닉 자산 현황과 횡령 내역을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대우그룹 채권단에게 통보해 환수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예금보험공사는 대우그룹 부실에 책임이 있는 관련자에 대해 2천500억원대의 손배배상청구소송을 했지만 현재까지 회수한 금액은 55억원에 불과했다. 수사결과 환수 가능성이 있는 재산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김 전 회장이 회사돈을 빼내 해외에 설립한 퍼시픽인터내셔널의 지분이다. 검찰은 이 회사의 지분이 현재 김 전 회장의 지인인 모 태국인 소유로 돼 있지만 사실상 김 전 회장이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자금이 건너간 것이 명백한 만큼 자금 환수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가족이 자진 반납하지 않을 경우 민사소송을 통한 강제집행 방식이 동원될 수 있다. 또 김 전 회장이 지난 96년 회사자금 526억원을 재미교포 조풍언이 대표로 있는 홍콩 소재 KMC로 송금한 것도 횡령으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2002년부터 자산관리공사가 재산환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이 회삿돈 46억원으로 사 모아 지금은 부인 정희자의 소유 미술관에 있는 유명작가의 미술품들도 재산환수 대상이다. 역시나 회사돈으로 구입한 보스턴의 80만 달러 상당의 주택과 프랑스 니스의 290만 달러에 달하는 포도밭,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돼 있는 4백만 달러도 환수가 가능하다. 한편 최근 자산관리공사 국정감사에서도 김 전 회장이 국내에도 적지 않은 은닉 재산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열린우리당 이상경, 전병헌 의원 등은 지난 10월10일 국감에서 로이젠이 추진하려는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 골프장 사업의 부지가 김 전 회장이 은닉한 재산이 분명하다며 가압류 같은 조처를 취하지 않는 자산관리공사를 강하게 압박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 자산관리공사가 낸 아도니스 골프장 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김 전 회장의 위장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전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0일 로이젠이라는 회사는 송진포 골프장 부지 28만평 중 21만평(시세 1천억원 상당)을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지성학원으로부터 헐값인 59억원에 매입했다. 해당 부지는 1982년 10월부터 83년 8월까지 5차례에 걸쳐 김 전 회장이 매입한 후 얼마 뒤인 7월, 11월 두 차례에 걸쳐 지성학원에 무상증여한 것이다. 문제는 로이젠의 주식 25%를 필코리아가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 75%도 정희자와 관련 있는 에이원컨트리클럽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들은 김 전 회장이 대우 계열사를 통해 송진포 골프장 부지를 매각하는 등 여러 편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현재 로이젠과 필코리아는 동일한 소재지(서울 중구 남대문 5가 655)에 있고, 로이젠과 필코리아의 임원들도 모두 동일한 인물로 전 대우그룹 임직원들로 구성돼 있다"며 이들 기업을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 일부를 관리해주는 위장계열사로 지목했다. 만약 이 땅이 김 전 소유라는 것이 확실히 밝혀지면 재산 환수 작업에 가속이 붙을 것이다. 대우사태 처리를 위해 16조7천억원이라는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음에도 그 회수 작업은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로이젠 건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