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천혜의 자연, 몽골로 역사문화 탐방
2025-09-04 김철홍 자유기고가
매일일보 |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모든 인연의 시작과 끝은 때가 있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억지로 만들 수도 없고 아무리 거부해도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나이 차가 있지만, 매월 만나는 시절인연(時節因緣)들이 있다.
몇 달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코로나 팬더믹으로 중단됐던 해외 역사·문화 탐방을 재개하자는 의견에 반응이 좋아 탐방단을 모집한 결과, 가족들 포함 20여 명으로 천혜의 자연을 찾아가는 몽골행이 확정되어 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사천리로 꼼꼼한 계획과 준비가 일행들을 부담감 대신 설렘과 희열로 출발일을 기다리도록 했다. 또한 직장 생활하는 친구를 위해 청주공항에서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그다음 월요일 새벽에 도착하는 짧은 일정 대신에 소기의 성과를 위해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출발시간이 되어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학창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소풍을 가듯 공항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버스 창밖 풍경도 만끽하면서 언제나 오면 기분 좋은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다. 몽골에서의 탐방 첫날은 몽골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서울에서 유학 등 7년간 생활했다는 여성 가이드의 안내로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인 테를지국립공원의 몽골제국 800년을 기념해서 만든 세계 최대 청동 기마상인 칭기츠칸 마상을 둘러보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성황당과 같은 자연 신앙적인 한 유형의 돌무지인 ‘어워’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 ‘유목민들은 어위가 이정표 역할을 하며 재앙을 막아준다고 믿어, 어디서든 어위를 만나면 예의를 갖추고 시계방향으로 세바퀴 돌며 작은 돌을 올려 놓고 소원을 빈다’는 설명을 듣고 일행 중 일부는 실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이어 근거리에 위치한 라마불교 양식의 코끼리 머리 형상을 한 아담한 아리야발 사원은 실로 산꼭대기에 있었다. 이 사원으로 가는 108계단을 오르며 러시아 식민지 시대에 불교 탄압으로 많은 사찰이 사라졌으나 이 사찰이 남아있는 이유는 정상까지 올라오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곳에서 한 몽골 신랑·신부의 웨딩사진 촬영에 많은 주변 친지가 동참한 것이 놀랍기도 했다. 수천 년간의 풍화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각품으로 몽골인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거북바위, 드넓은 초원의 몽골 유목민들이 이동이 편리하도록 분해·조립이 쉬운 전통가옥인 게르가 밀집된 유목민 마을도 소중한 역사문화 탐방지로 인상적이었다. 또한 게르에 들어가 몽골인들의 주거형태와 방식 그리고 생활상을 설명 듣고 옛날에 좁은 한옥에서 대식구가 생활했던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가죽 부대의 양젖을 하루 1,000번 저어 발효시킨 몽골의 전통주인 ‘아이락’은 우리의 산성막걸리와 같고 ‘아이락’을 증류시킨 ‘쉬민 아르히’ 도수가 40도라는 사실이 우리의 전통주와 유사한 점이 특이했다. 우리의 만두와 같은 호쇼르, 양갈비와 전통차인 수테차 등 전통음식 체험도 우리 일행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천혜의 자연을 찾아서 광활한 초원의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승합차인 ‘푸르공’을 타고 푸른 초원의 넓은 시야, 저 멀리 지평선까지도 가깝게 느껴지는 곳, 청명한 날씨에 이쁜 구름과 어울리는 푸르공이 모두를 즐거운 함성과 함께 웃음소리 끊기지 않았던 몽골여행을 책임지는 감성 카임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다이나믹하고 멋진 체험이었다. 이뿐 아니라 게르에서 숙박하며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빛 감상도 이색적이었다. 탐방 이튼날 첫 일정은 ‘울란바토르의 강남’이라는 부촌인 자이승(Zaisan)에 서울의 남산처럼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로 향했다. 이곳은 몽골이 구소련군과 함께 연합군으로 참전, 2차 대전에서 승리하여 1971년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구소련이 몽골에 기증한 탑으로 러시아 푸틴대통령 방문에 따른 공사 중이라며 출입이 통제되어 일부만 관람할 수 있었다. 이어 시내방향 왼쪽 평지에는 몽골의 슈바이쳐, 항일독립지사 이태준열사 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일행은 ‘애국지사 이태준 선생의 묘’를 참배하고 그동안 상세하게 알지 못했지만, 의열단에 가입하여 비밀 활동 및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 항일독립운동과 몽골인들의 질병 치료 의사활동 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어와 몽골어로 이태준 열사의항일독립운동 및 몽골에서의 활동, 이태준기념공원, 이태준 가묘, 생애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이태준 기념관’ 안내서가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송혜교 배우의 기증으로 이루어진 것을 안 필자는 문화재 지킴이로서 그들에게 반갑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국가의 품격은 국가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 마침 떠올랐다. 소홀하기 쉬운 해외의 독립운동유적지 보존을 위해 우리 정부의 많은 관심은 물론 우리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정말 필요함을 현장을 보고 느낀 바가 크기 때문이다. 다음 탐방지는 울란바토로 국립박물관으로 입구에 들어서니 전광판에 한글로 환영 문구가 무척 반가웠고 우리나라의 위상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공식 탐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몽골 국회의사당을 지나 울란바토르의 중심부인 수흐바타르 광장을 도보로 이동 중 광장 한편의 요란한 음악 소리에 눈을 돌리니 무대 상단에 ‘2024 KOREA WEEK’라는 문구가 보여 다가가니 이 ‘한국 주간’행사에 영남대 국악과와 대경대 태권도학과 공연팀의 다이나믹한 사전공연이 양국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풍성한 무대로 선보여 잠시 지켜보던 일행 모두는 한국인으로서 한없는 자긍심을 느끼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탐방 일행 대부분은 부부였고 아들만 셋인 부부, 아들 둘·딸 하나인 부부 마저도 세 딸과 부부 다섯 명이 참여한 가족을 마냥 부러워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세 딸은 탐방기간 내내 엄마, 아빠를 챙기는 정말 이쁜 모습을 보였다. 빡빡한 일정으로 늦은 시간까지 강행군에도 전혀 불평불만 없이 즐기고 집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몽골이 우리와는 지리적 여건이나 경제적 상황은 다르지만, 역사와 문화적 관점 그리고 향후 잠재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와 추억을 만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는 일관된 호평을 듣고서 주변 많은 지인 및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싶다. 이번 여행은 의미를 부여하자면 나이 적게는 퇴직기념 여행 또는 환갑기념 여행이고 60대 초·중반인 경우는 해외여행이기에 남다른 감회와 신체적 컨디션을 시험하는 의미가 곁들여져 있었다. 사실 처서가 지났지만 계속되는 폭염에서 벗어나, 시절인연 모두에겐 천혜의 자연에서 힐링과 함께 정서연금을 듬뿍 받는 호사를 누리는 좋은 시간이었다. 친구들이여, 늘 건강하고 늘 좋은 일만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련다. 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