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 확산에 증시 자금이탈 가속화...코스피 '짙은 먹구름'

경기둔화 우려 확산…"코스피 하방압력 커져" 코스피 거래량도 뚝뚝...5년 만에 최저 기록

2024-09-04     이광표 기자
코스피가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가 금융시장을 강타하며 국내 증시에도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주도주인 반도체주가 부진한 가운데 전날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마저 급락한 것을 볼 때 앞으로도 반등의 동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코스피 거래량이 5년 전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투자심리 위축도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82.63포인트(3.10%) 내린 2582.00으로 마감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2500선에 머문 것은 지난달 9일 이후 약 한달 만이다. 특히 지난달 초 폭락 이후 회복세가 둔화하면서 횡보하던 코스피가 한 달 만에 또다시 큰 폭으로 내리면서 2600선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시장에선 본격적인 약세장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우려와 미국 주식시장의 대형주 집중도 하락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수익률이 둔화했다"며 "문제 해결을 당장 기대하기보다는 당분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시의 수급 여건도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하는 모습이다.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인 22조9천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 투자자는 하반기 들어 매도세를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은 7월 1조7150억원 순매수를 기록하며 매수세가 꺾이기 시작한 데 이어, 8월에는 2조84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지난달 '블랙먼데이' 이후 코스피에서 2조4천억원을 순매도하는 등 위험자산을 줄이면서 코스피가 대형주 중심으로 부진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비우호적인 대외적 환경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추정치를 기존 3.2%에서 3.1%로 낮췄고, 중국 추정치도 5.0%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지난달 폭락장의 배경 중 하나였던 엔화 절상 리스크도 다시금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변동성이 커진 액티브 장세에서 중소형주가 방어선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마저 국내 내수 부진을 고려하면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단기 방향성 탐색 구간이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변동성 레벨도 재차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내수 지표를 볼 때 중소형주에 대한 투자의견을 상향하기에도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전통적으로 약세였던 8, 9월의 계절적 영향과 중기적으로는 11월 미국 대선의 영향으로 이처럼 불안한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팩트셋 리서치가 최근 10년간 S&P500 지수의 월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9월은 평균 2.3% 손실을 기록하며 연중 실적이 가장 낮았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제조업 건설투자의 둔화 흐름을 언급하며 "낙폭이 점점 과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첫번째 분기점으로는 11월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1월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추가적 모멘텀을 만들지, 미 대선이 끝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는지에 따라 시장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예상다. 무엇보다 코스피 거래량이 5년 만에 최저를 기록하는 등 투심이 위축되고 있는게 문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첫 거래일이었던 지난 2일 코스피 거래량은 2억6247만주로 지난 2019년 9월2일(2억6215만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루 뒤인 전날 2억9107만주로 소폭 늘었으나 2억주는 벗어나지 못했다. 연중 최대 거래량인 지난 1월17일(9억6560만주)과 비교하면 69.86% 급감했다. 거래대금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거래대금은 지난 2일(8조6700억원)에 이어 전날에도 8조원대인 8조7995억원에 그쳤다. 올해 들어 거래대금이 가장 많았던 지난 6월13일(19조1359억원) 대비 54.02% 축소된 규모다. 이는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매년 9월은 약세장으로 여겨진다. 매크로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미국 법인세 납부 기간 등이 겹쳐서다. 그 사이 대기성 자금은 쌓여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대표적인 대기성 자금인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지난 2일 기준 87조1189억원으로 또 다시 88조원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달 23일(88조1608억원)에는 지난 2006년 통계가 작성된 이후 역대 최대 잔고로 88조원을 돌파한 바 있다. CMA는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하고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투자처가 나타나면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단기 자금이 머무는 것으로 인식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낮아진다고 주식시장이 바로 반등하지 않는 데다 미국 대선 불확실성도 부담"이라며 "지난달 급락으로 반등 여력이 약해진 증시 입장에서 아쉬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