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횡설수설하는 구영배, 언제까지 봐줘야 하나
2025-09-05 이선민 기자
매일일보 = 이선민 기자 | “한 분만, 한분이라도 저를 믿어주신다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큐텐을 어떻게 키웠는지 아십니까? 지금 큐텐 재팬이 지금 얼마나 큰 기업인지 아십니까? 큐텐은 아마존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어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가 터진 후 국회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구영배 큐텐 그룹 대표는 복도에서 잠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말했다. 처음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로 말문을 열었으나,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에 갑자기 눈을 빛내며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어떤 영화나 만화에 나올 법한, 멈추는 법을 잊은 미치광이 과학자 같았다. 현장에서 15분여간 구 대표가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진짜로 그에게 또다른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티메프가 판매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미정산 금액이 1조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이었다. 책임지겠다고 말한 직후 돌연 회생신청을 한 구영배 대표가 또다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법이 만만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메프에 대한 자율구조조정(ARS) 프로그램 기간에 구 대표는 KCCW라는 신규 법인을 통해 사업을 정상화하고 판매자의 정산대금을 갚겠다고 나섰다. 실제로 KCCW의 설립 등기를 완료하고 서울 강남구에 본사도 차렸다. 미정산 대금을 전환사채(CB)로 출자해 새로운 플랫폼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주장에 국회에서 본 구 대표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기에 가까운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가 망상에 빠져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고 나섰는데,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차리고 새로운 회사를 차릴 수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피해자들은 KCCW의 주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판매대금을 받고 싶을 뿐인데 큐텐은 현금화 작업을 진행할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ARS 프로그램 기간에 자금 조달 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법원이 채권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추석 연휴 전에 두 회사의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회생이든 파산이든 판매자들은 1조3000억원에 이르는 판매대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피해판매자들을 위해 1조6000억원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뿐이다. 4만8000여개의 피해기업들은 내가 떼 먹힌 돈인데 왜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가며 갚아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고, 기존에 대출이 있으면 추가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데 정부가 지금 무슨 지원을 하고 있다는 건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피해판매자들은 주말마다 티메프 경영진의 구속 수사와 피해 구제 방안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검은 우산 집회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구속은 커녕 신사업안을 들고 활개치고 있다.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고 하지만 출국금지 외에 어떤 조치도 없다. 중소기업은 개별 회사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다. 피해판매자들이 줄도산한다면 고물가∙고금리로 이미 장기간 침체된 경기에 치명타가 된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사태를 수습하겠다던 구 대표는 처음에 70억짜리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아파트부터 내 놓아야 했다. 이제라도 약속대로 자신과 큐텐의 재무자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