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냉·온탕식 갈팡질팡 대출 규제, 실수요자 피해 우려만 키운다

2025-09-09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금융 당국의 일관성 없는 냉·온탕식 오락가락 대출 규제로 금융권과 실수요자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잦은 말 바꾸기에 은행의 주택 관련 대출이 갈팡질팡하며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4일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 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와의 현장간담회 자리에서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주택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출 정책을 점검하겠다”라고 밝히면서, 은행 대출 업무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최근의 대출 억제 기조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발언이자 필요할 경우 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 당국은 가용할 수 있는 규제를 총동원해 가계 대출 증가세를 꺾겠다고 공언했는데 돌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을 불러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대출 자제를 압박했고 이후 은행들은 속속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렸다. 또 시중금리는 떨어지는데 대출금리만 ‘역주행’을 하자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대출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들을 책망했다. 은행들은 금융감독원장의 말에 따라 금리 인상 대신 대출 한도 축소, 다주택자 대출 제한 강화, 전세대출 제한 등의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이렇듯 금융 당국은 가용할 수 있는 규제를 총동원해 가계 대출 증가세를 꺾겠다고 공언했는데 돌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불과 열흘 만에 다시 실수요자 보호 언급이 나오자,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당국 눈치를 보느라 대출 업무가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은 오는 10일로 예정된 금융감독원장과 시중 은행장 간담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는 대출 규제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실수요자 피해 방지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확실한 대책이 나오기는 어려워만 보인다.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디딤돌대출 등의 정책 대출을 확대한 데다 지난해 말 은행에 ‘상생 금융’을 압박해 대출금리를 인하했고, 7월초 시행 예정이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적용을 부동산 시장 위축 우려를 내세우며, 9월 초 시행으로 두 달이나 연기하는 등 금융감독원장의 말 바꾸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후 규제 강화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가수요가 폭발하면서 7, 8월 가계 대출 증가 폭은 16조 7,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이에 놀란 금융감독원장은 이번에는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주택가격 반등에 따른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한다”라고 압박했고, 결국은 은행들이 한 달에만 무려 20번 금리를 인상하는 초유의 사태를 촉발시켰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급기야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9월 6일 예정에 없던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변함이 없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수차례 반복하기에 이르렀다. 김 금융위원장은 당초 다음 주 중 현안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금융 당국의 대출 기조를 둘러싼 시장의 혼선이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터라 일정을 급히 앞당겨 수습에 나섰다. 김 금융위원장이 이날 전면에 나선 것은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에 은행들의 대출 정책이 오락가락해 소비자들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방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비친다. 문제는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금융 당국의 섣부른 개입이 부동산 시장 불안을 키우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택 실수요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수년 내 내 집 마련을 계획했던 사람들은 대출 규제 강화 움직임에 무리해서 대출 신청에 나서며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됐고, 실거래 의무지역에서 전세를 끼고 주택 구입 후 천천히 반환할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려던 사람들은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힘들어져 곤란에 빠졌다. 간절한 내 집 마련의 꿈과 한계에 달한 가계 대출이 모두 금융감독원장 입만 쳐다보는 이상한 상황으로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금융 감독 당국의 오락가락 조변석개(朝變夕改) 규제는 가계 빚 급증을 유발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월별 가계 대출 증가 규모는 4월 4조 4,346억 원에서 7월 7조 1,660억 원까지 불과 3개월 새 2조 7,314조 원(61.6%)이나 늘어났다. 7월 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연기가 시장에 왜곡된 시그널을 보낸 탓이 무엇보다 크다. 지난 9월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올해 8월 말 기준 가계 대출 잔액은 725조 3,642억 원으로, 7월 말 715조 7,383억 원보다 무려 9조 6,259억 원(1.34%)이나 늘어났고, 가계 대출 급증세를 견인한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지난 8월 말 568조 6,616억 원으로 7월 말 559조 7,501억 원보다 8조 9,115억 원(1.59%)이나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이 고금리 시절 은행의 ‘이자 장사’를 탓하며 대출금리를 억누른 것도 가계 빚 관리 실패의 원인이 됐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이 예상하지 못한 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 들쭉날쭉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렇듯 금융감독 당국의 섣부른 개입이 부작용을 낳았는데도 그 탓을 외려 은행에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당국이 나서 금융시장의 교란을 효과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면 당연히 개입해야만 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장의 냉·온탕 갈팡질팡 대출 규제는 가계 빚 폭증을 유발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한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 결정까지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무엇보다도 대출 규제가 너무 갑작스럽고 거칠게 이뤄지면서 선의의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비등하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도 아니고 1주택자까지 ‘투기꾼’ 취급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틀어막는 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다. 자녀 취학이나 이직 등으로 이사하려는 사람들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이자 치명상이다. 금융 당국이 일관된 억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가계 빚 리스크는 더 커질 우려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제라도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고, 은행들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명확한 대출 억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시장의 혼선을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추이를 주도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가계부채가 확실한 안정세로 돌아설 수 있도록 주택담보대출 증가세에 대해 높은 경각심을 갖고 일관성 있고 단호하게 대출 억제 원칙을 견지하고 대출 규제 정책을 시행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집값 상승과 가계 빚 급증을 걱정해야 하는 정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금융권 대출에는 LTV(담보인정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란 ‘3중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만기 40~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이 없어지면 대출자가 매달 갚아야만 하는 원리금이 늘어나 가계 부담이 더 커져 젊은 층의 ‘주거 사다리’를 끊을 수도 있다. 작금의 격화일로(激化一直)의 가계부채와의 전쟁은 ‘대출 억제’와 ‘공급 확대’란 일관된 기조로 승기를 잡아야만 할 것이다. 무조건적 막무가내식 대출 중단과 대출 한도 줄이기에만 나서고 있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가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투기 목적이 아닌 실수요자의 피해가 없도록 더욱더 세심하고 주도면밀한 정책 시행이 필요함을 직시하고 각별 유념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