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후위기 엄습… 국가 차원 대응 현주소는?
구체적 대응방안 미흡·예산 부족 지적
2025-09-09 김승현 기자
매일일보 = 김승현 기자 |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위기로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속출하자 정부의 예산 편성과 중장기 대책 마련이 미흡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9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 8월 주택용 전기 가구당 평균 사용량은 363kWh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 늘었다. 같은 기간 주택용 전기요금은 6만3610원으로 13%(7520원) 올랐다. 8월 말까지 집계된 검침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해당 요금은 최종 전기 사용량이 확정되는 이달 중 더 오를 수 있다. 작년 8월보다 올해 8월 전기요금이 증가한 가구는 76%에 달한다. 평균 증가액은 약 1만7000원으로 누진제가 적용되는 요금 특성상 가족 수가 많거나 전기 사용량이 많은 고객 부담은 더 컸다. 더위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이들도 늘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21일 사이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3019명으로 지난해 누적 기록(2818명)을 넘어섰다. 이는 역대 온열 질환자가 가장 많았던 지난 2018년(4526명)에 이어 두 번째이며 추정 사망자만 28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기후위기 속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은정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누군가에게는 폭염이 전기세를 더 내는 정도의 불편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내놓고 하루를 버텨야 하는 전쟁터와 같다”며 “기후위기로 인한 우리 사회 불평등 구조는 더욱 깊어졌고 이를 고착화하는 시스템이 기후위기를 자초한 원인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가 심각한 기후위기로 고통받고 있다”며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난이 끊이질 않고 기후변화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산업 생산성 저하로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었다”며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2025년 예산안’에는 기후변화 등 국가 현안을 다룰 공공문제해결 지원 R&D 분야 예산이 3조7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올해 배정된 예산보다 3000억원 늘어난 액수지만, 실상은 신종 보이스피싱 조기 탐지나 생활화학제품 안전기술 등 재난과 범죄 대응 예산이 포함된 액수다. 순수한 기후대응기금은 2조3918억원으로 오히려 지난해보다 949억원 줄었다. 기후대응기금 정책목표 중 탄소중립 기반구축에 속하는 녹색 R&D 예산은 74.6% 삭감됐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22년 270억달러(약 36조원)를 투입하는 등 예산을 늘렸지만, 우리나라는 거꾸로 간 것이다.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추진한 기후대응댐 건설조차 찬반이 엇갈린다. 정부는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후대응댐 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는 토목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비이성적인 정책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국내 첫 기후위기 헌법소원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WWF(세계자연기금)는 대한민국 정부에 기후위기 대책 강화를 촉구했다.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에서 오는 2030년에 지난 2018년 대비 40%가량 국가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법에서 지정한 탄소중립 목표 시점은 오는 2050년으로 2030년 이후 구체적인 감축 목표가 빠져있다. WWF 관계자는 “해당 결론은 지난 2020년 3월 처음 제기된 후 4년 반 만에 나온 결정으로 한국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정부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국가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우리나라 기후대응기금의 절대적인 규모가 너무 작다”며 “지원 대상도 해외에서는 피해를 본 시민이나 가정에 집중되지만, 우리는 산업계나 감축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곳에 몰려 내용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예산 증액을 촉구했다. WWF 관계자는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현재 2030년까지 설정한 감축목표를 오는 2035년까지 상향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장기적인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은정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 8월 국회가 만든 탄소중립기본법이 헌재로부터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이 내려진 만큼 정부는 기후위기 시대 요구에 걸맞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기후 관련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기후상설위원회를 당장 구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