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빌린 돈 못 갚은 ‘신용유의자’ 급증,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 강화를
2025-09-10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을 제때 못 갚아 ‘빚 수렁’에 빠진 채 ‘신용유의자(信用留意者 │ 옛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청년의 수가 불과 2년 7개월 만에 무려 25.3%나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유의자는 연체 기간이 정해진 기간(대출 만기 3개월 경과 또는 연체 6개월 경과 등)을 초과하면 신용정보원에 등록되며 신용카드 사용 정지와 대출 이용 제한, 신용등급 하락 등 금융 생활에 여러 불이익을 받는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빚이 쌓여 신용불량 상태에 빠지는 청년이 많다고 한다.
지난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업권별 신용유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한국신용정보원에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20대는 6만 5,887명(중복 인원 제외)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 5만 2,580명 대비 1만 3,307명(25.3%)이나 급증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체 신용유의자가 54만 8,730명에서 59만 2,567명으로 4만 3,837명(7.98%)가량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20대는 무려 3.29배나 빨라 그 증가세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수십만~수백만 원 수준의 대출을 갚지 못한 소액 연체자 비중이 큰 것도 청년 채무의 특징으로 나타났다. 신용평가회사(CB)에 단기연체 정보가 등록된 20대는 지난 7월 말 기준 7만 3,379명(카드대금 연체 제외)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연체 금액이 ‘1,0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6만 4,624명(88.1%)이었다. 이렇듯 1,000만 원 이하의 소액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만 봐도 청년 생활고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 낙인’이 찍혀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화하는 구조다. 한편 지난 9월 9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연령대별 카드사 리볼빙 잔액·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업 카드사 8곳에서 리볼빙을 이용한 회원 중 29세 이하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2.2%로 집계됐다. 20대보다 연체율이 높은 연령대는 2.6%를 차지한 60대 이상밖에 없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최소 10%만 우선 갚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넘겨 갚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카드 대금을 갚기 어려운 이용자들이 일단은 당장 연체를 막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빚더미에 눌린 20대가 법원에 개인 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0대가 서울회생법원에 신청한 개인 회생 사건은 3,278건으로 2022년 2,255건보다 1,023건(45.36%)이나 급증했다. 2021년 1,787건과 비교하면 무려 1,491건(83.43%)이나 가파르게 늘었다. 문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많지 않은 빚 때문에 신용불량이 되는 청년이 다수라는 점이다. 직장을 구해 고정 수입이 생기면 1, 2년 안에 털어낼 수 있는 빚인데도 취업이 안 되다 보니 신용불량의 늪에 빠진 것이다. 신용유의자로 등록되면 빚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당연히 신용카드 사용이 정지되고 신용등급 하락 등 경제활동에 불이익을 겪게 되는 것은 마치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소되려면 취업 사정이 나아져야 한다. 하지만 취업 준비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등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하는 ‘현역 취업’이나 1년 안에 취업하는 ‘취업 재수’가 줄고 삼수생 이상 취업 장수생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7월 16일 발표한 ‘2024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취업했거나 취업 경험이 있는 20~34세 683만 2,000명의 평균 첫 취업 소요 기간은 14개월로 1년 전보다 1.7개월 늘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7년 이후 역대 최장기간이다. 졸업 후 첫 취업까지 1년 이상 걸린 청년은 32%, 2년 이상인 경우도 20%나 된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수도 줄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1일 발표한 ‘2024년 1/4분기(2월 기준) 임금 근로 일자리 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0대 이하 청년의 일자리는 308만 6,000개로 작년 동기 318만 9,000개보다 10만 3,000개 감소했다.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지난 8월 27일 밝힌 ‘2024 하반기 채용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채용계획을 확정한 대기업이 조사대상 103곳 중 35.0%에 불과해 양질의 일자리 공급도 부족하다.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라는 청년(15~29세)이 올해 7월 기준 44만 3,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해 대한민국 청년의 고용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송두리째 알려주고 있다. 청년층의 학력 수준은 높아만 가지만 갈수록 심화하는 ‘일자리 양극화’는 청년들의 경제활동을 주저하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세전)은 대기업이 591만 원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286만 원에 그쳤다. 무려 2.06배 이상 차이가 났다. 문제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 다수는 취업 문턱을 넘기도 전에 빚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얼마 안 되는 빚에 짓눌려 위기를 맞은 청년들을 위해 정부와 금융권은 서둘러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