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저성과자, 방치와 방출 그 사이

2025-09-11     문유민 YM노무사사무소 공인 노무사
문유민

매일일보  |  If you are on this call, you are part of the unlucky group that is being laid off. (귀하가 이 회의에 참석 중이라면, 귀하는 정리해고 대상이 되는 불운한 집단의 일원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스타트업 CEO가 화상회의로 직원 900여 명을 해고하면서 했던 말이다. 비인격적인 해고 방식을 취한 해당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공분을 샀다. 그러나 화상회의라는 플랫폼 사용이 극단적일 뿐 문제가 되는 회사의 해고 방식은 여느 미국 기업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몬태나주 등 일부 주(州)에 속한 경우 혹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 기업들은 ‘임의고용 원칙(At-Will Employment)’을 따르고 있다. 한국어로 해석하니 단어가 거창해지지만, 사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고용관계라는 뜻이다. 개략적으로 이해하자면, 근로자는 물론 사용자도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다수의 다른 국가와 유사하게 해고에 ‘정당성’을 요구한다. 또한, 정당성이라는 허들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최근 들어 외국계 기업 자문사들이 저성과자의 방출 방안에 대해 질의하는 빈도가 늘기 시작했고, 친한 인사담당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실적이 부진한 인력 집단을 중심으로 고용조정을 실시하는 효과적인 방안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의식 있는 회사들 대부분이 해고는 우리나라에서 최후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회로를 택해서라도 인원을 감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관은 대개 단기적 관점에 따라 저성과자를 방출하려고 하는데 국내 노동관계법령이나 법원 판결의 경향을 보면 단기적 관점에 따른 방안들은 시대적 흐름에서 조금 뒤처진 방식이므로 시간적 측면에서 관점을 장기화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권고사직을 유일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권고사직을 실시하려는 경우 매력적인 퇴직 조건 제시 및 면담자의 탁월한 협상 스킬이 요구된다. 접근 방법이 정교하지 못한 경우 강요에 의한 사직으로서 해고로 해석되거나, 대상자의 면담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관점에 따라 회사가 저성과자에 대해 대응할 방도는 바로 ‘관리’이다. 저성과자를 즉각적으로 퇴출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이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징계 혹은 해고를 고려하는 것이다.  관리는 시스템의 완비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조직에서 저성과자를 척결하기로 했다면 저성과자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상사와 불화, 팀 내 집단 따돌림 등으로 평가자에 의한 감정적 평가에 휩쓸려 저성과자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의 미션 및 비전체계, 경영전략, 경영계획에 정렬되는 성과의 기준을 정해 구성원별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실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시해야 할 것이다. 저성과자의 기준을 확립했다면 근로자가 입사하는 시점부터 성과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실무적으로 수습제도와 혼용돼 표현되는 사용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채용 심사만으로는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본채용을 확정하기 전에 몇 주 또는 몇 개월간 그 근로자의 업무능력, 자질, 인품, 성실성 등 업무적격성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기간을 두는 것이다. 시용제도는 기간제, 정규직 등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적용할 수 있으나,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등에서 시용제도가 적용됨을 명시해 근거 규정을 확보해야 한다. 본채용 이후 재직 중인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성과에 대한 인식을 환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인사평가의 활용을 통해 가능하다. 대부분 회사가 평가체계를 직급 및 승진체계, 보상체계와 연계해 운영하고 있으므로 평가 결과가 부진한 경우 승진 및 임금 인상을 다소간에 억제하는 방식을 취해 직원들에게 업무 성적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인사평가 결과는 적정한 PIP(성과향상프로그램) 실시의 단초로 활용될 수 있다. 법원은 현대차, 현대중공업, 교통안전공단의 PIP 실시에 따른 해고의 정당성이 문제 된 사안에서 정당성을 인정한 바 있는데 이들 기관은 모두 최소 2년 이상의 인사평가 결과를 토대로 하위 집단을 PIP 실시 대상자로 선정했다. 시용근로자를 평가할 때와 일반 근로자들에 대해 정기 인사평가를 할 때 활용하는 평가 기준은 상이하지만, 공통으로 그 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부당한 인사처분으로 인한 법적 리스크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평가항목의 구체화 △다면평가 실시 △절대평가 실시 △상세한 평가의견 작성 △평가자 교육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사업장 현황에 따라 적합한 방안이 다르므로 공인노무사와 협력해 평가체계 개선 컨설팅을 실시하면 법적 리스크를 야기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필자가 오래전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디며 마음속에 새겼던 문장이다. 그런데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법원은 ‘개선의 기회’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저성과자에 대한 대응을 육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종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직의 규모를 탄력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준다면 오히려 그것이 경영에 활기를 불어넣고, 고용 활성화를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는 아쉬움도 뒤따른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관계 법령을 위반한 책임은 위반자가 스스로 부담하게 되므로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긴 호흡으로 조직 내 저성과자를 관리하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