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삐삐' 수백대 연쇄 폭발로 2800여명 사상

헤즈볼라‧하마스, 이스라엘 배후 지목 보복 예고도

2025-09-18     성동규 기자
레바논

매일일보 = 성동규 기자  |  레바논 전역에서 17일(현지시간)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주로 쓰는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28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예고해 중동 지역의 긴장이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폭발은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했다. 레바논 보건당국은 국영 언론을 통해 이 폭발로 최소 11명이 사망하고 28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NYT는 부상자 중 약 200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사망자 중에는 헤즈볼라 무장대원과 조직원의 10살 딸 등이 포함됐다.  폭발은 오후 3시 30분께부터 1시간가량 계속됐고 일부는 호출이 울려 피해자들이 화면을 확인하는 도중에 폭발했다고 알려졌다. 미국과 서방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NYT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수입한 무선호출기에 사전에 소량의 폭발물과 원격 제어 스위치를 설치해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헤즈볼라가 대만 골드아폴로에 주문해 납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AR924 기종으로 각 기기의 배터리 옆에 1∼2온스(28∼56g)의 폭발물이 들어가 있었으며 이를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도 함께 내장됐다. 이스라엘은 또한 무선호출기가 폭발 직전 수초간 신호음을 내게 하는 프로그램까지 설치했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이스라엘·레바논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호출기가 폭발해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부상한 것으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파악했다. 모즈타바 아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이란 언론들의 보도도 나왔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마스는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은 이날 폭발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레바논 정부는 내각회의 이후 "레바논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이스라엘의 범죄적 공격을 만장일치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이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이후 헤즈볼라는 최근 몇 달 사이 통신보안을 위해 호출기를 도입했다.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 디지털인권단체 SMEX는 이스라엘 측이 기기를 조작하거나 폭발장치를 심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스라엘 측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공교롭게도 이번 폭발은 이스라엘 군 당국이 헤즈볼라에 대한 무력 군사 작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하루 만에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던 이스라엘  헤즈볼라 간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사건을 미리 알지 못했다며 당사자들의 외교적 해결을 당부했다. 유엔 역시 호전적 행위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