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산물 피해 ‘엎친 데 덮친 격’
2025-09-25 김철홍 자유기고가
매일일보 | 엊그제 추석 명절을 지내고 50년 가까운 시절인연을 만나 어릴 적 시골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이용했던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 연상되는 ‘나루터’처럼 정감 가는 소박한 공간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한다는 얘기가 “누군가 밤나무 밑의 무성한 잡초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밤을 모조리 주워가 보초를 서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지난 주말 갑작스런 폭우에 바람으로 수확을 앞둔 농작물이 모조리 다 쓰러져 폭망했다”는 것이다. ‘농산물 도둑맞고 폭우로 농산물 다 넘어져 도저히 일어설 힘이 없다.’는 어느 농부의 하소연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옛날 개구쟁이 시절 많은 시골 사람이 밭에 농작물을 서리해서 먹기도 했고 들켜서 혼쭐난 서리라는 문화가 있었다. 당시엔 그저 인심으로 이해하고 어른이 돼선 그걸 배고프던 시절의 추억이라고 웃어넘기곤 했다. 지금의 정서론 ‘서리’라는 표현이 ‘도둑질’로 바로 경찰서행인데 말이다. 이번 비가 200년 만에 내릴 법한 극한 호우로 최대 500㎜의 호우가 쏟아져 경남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가야 고분 허리가 폭삭 내려앉았고 전국적으로 수확을 앞둔 작물들이 비바람에 쓰러지고 밭에 물이 차면서 축구장 5000개 면적의 농작물 피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자연재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농산물 절도는 농업인들의 땀과 정성을 훔치는 짓이다. 피해를 본 농가는 실의에 잠기게 되고, 심한 경우 생계마저 위협받는다. 요즘 과일값이 좋고 딸기·방울토마토·상추 등 채소류가 금값이어서 도둑이 더 활개를 치고 있다. 더욱이 요즘 가을철 농산물 수확기의 기상이변으로 쏟아진 폭우도 한몫하고 있다. 이는 며칠 전 셋이 간 집 근처 큰 횟집에서 상추 3장이 나왔고, 단골 칼국수 집에서 쑥갓이 사라진 걸 보고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농산물 도난 사건이 많은 것은 농촌지역에 CCTV가 도시처럼 많이 설치돼 있지 않고 도난 사건의 확인과 신고가 늦어 탐문이나 현장 감식에서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하는 현실과 함께 일반 절도사건에 비해 농산물 절도사건 범인 검거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농산물 절도 및 도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다. 한 관광지에서 한창 수확 중인 밭에서, 외지의 관광객들이 수확이 끝난 것으로 오해해 무나 배추를 뽑아 간 것처럼 한 포기쯤은 절도가 아니라는 기성세대의 과거 ‘서리’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개선해야 할 시민의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월의 흐름과 변화가 옛날 배고팠던 시절과 달리 지금 분명히 다른 경제적 도덕·윤리적인 가치 기준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농산물 절도로 농심이 멍들은 농업인을 위해 예방 대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논리와는 반대로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의 치안센터 폐지 등 치안 공백 문제는 되레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히 경제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농촌지역 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취약지역 범죄예방진단을 실시하고, 기존의 CCTV 일제정비 및 CCTV를 대폭 확충하고 취약시간대 탄력순찰 노선지정으로 집중순찰, 협력치안활성화를 위해 자율방범대 등을 활성화하는 등 농촌 치안 유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농업인들도 당연히 농산물 도난을 막기 위해서 농가 스스로 각별한 주의도 필요하다. 창고와 비닐하우스 등 농산물 보관장소에 반드시 잠금장치와 CCTV 등을 설치하고 차량 블랙박스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마을 등 지역에선 낯선 차량이나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차량번호를 적어두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즉시 경찰에 알리는 등의 범인 검거애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실은 정말 너무 참담하고 슬프다. 농업이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창고 외에 환경보호, 생태계 유지 등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공익적 기능이 있음에도 정부나 국민들이 소홀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늘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들이 전업이든 이종 겸업이든 소통하고 시간적·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선진 농업 해법 플렛폼으로 진정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주도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참된 농업인, 국민적 영웅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김철홍 자유기고가(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