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시급한데···공사비가 발목
서울 시내 곳곳 발주·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 원가 부담에 수주 뒷걸음···주택난 우려 증폭
2024-10-15 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서울·수도권 주택사업 현장 곳곳에서 발주처(조합)와 시공사 간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마찰이 이어지면서 새 아파트 공급에 제동이 걸렸다. 수년째 이어진 공사비 상승으로 발주·수주 동반 감소와 주택난이 가중될 가능성이 고조되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이촌현대 리모델링(이촌 르엘) 프로젝트가 공사비 조정 마찰로 공사가 중단될 위기를 맞고 있다. 이촌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은 지난 2021년 4월 롯데건설과 시공 계약을 맺고 이듬해 8월 착공해 현재 기초공사(공정률 10.5%) 중이다. 최근 공사 기간과 공사비 증액을 놓고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불거졌고, 시공사가 시공 중단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당초 3.3㎡당 542만원으로 계약했지만, 롯데건설은 원가 상승을 이유로 926만원으로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6구역(방화뉴타운) 재개발사업은 공사비 문제로 시공 계약이 해지된 사례다. 작년 4월 이주·철거가 완료된 이곳은 공사비 조정 불발로 1년째 공사가 멈춰 섰다. 조합은 지난달 말 시공권을 쥐고 있던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내년 5월 입주할 예정인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 재개발(장위자이레디언트)도 공사비 증액 문제로 시공사인 GS건설이 공사 중단을 예고했다. GS건설은 올 초 공사비 약 722억원 상향을 요구했고 지난 7월까지 483억원까지 조정됐지만 이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밖에도 △부산 괴정5구역 △인천 부개4구역 △서울 노원 상계5구역 등에서 발주처와 시공사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돼 시공사를 다시 선정 했거나 재선정을 추진 중이다. 최근 몇 년간 자잿값과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건설사들이 사업에 투입하는 원가 비중을 보여주는 원가율은 올해 상반기 10대 건설사 기준으로 94.3%(각사 전자공시 기준)에 달한다. 이외 중견·중소 건설사 가운데 원가율이 100%에 육박하거나 넘어선 곳도 다수 확인된다. 상황이 이렇자 '아파트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업계에 확산됐고, 발주는 물론 수주·착공이 동시에 줄면서 공급부족 문제는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부는 이달 초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통해 "자재비와 인건비, 공공조달 등 공사비 3대 안정화 프로젝트를 가동해 최근 3년간 연평균 8.5%였던 공사비 상승률을 2026년까지 2% 안팎으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고공행진 중인 시멘트 값을 잡기 위해 중국산 수입을 늘리는 한편, 레미콘·가구 등 주요 자재별 불공정 관행 점검에 착수했다. 대한건설협회 등으로 구성된 건설단체총연합은 일단 환영이라는 반응을 내놨지만, 업계에선 당장 부담이 큰 인건비 문제와 작업시간 규제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공존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 주 52시간제와 17시 이후 콘크리트 타설금지 등으로 공기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면서 "기본적인 인건비 상승과 시간외수당 증액 등은 자잿값에 버금가는 원가 상승 요인"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