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철학 빠진 부동산정책, 서민에게는 독
2025-10-21 안광석 기자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필자 본인에 한해서는 30대 시절 디딤돌대출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LTV나 DTI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생애 최초 구입 혹은 신혼가구 조건 충족 시 구매주택 가격의 절반이 넘는 한도로 대출이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3%가 안 되는 저리가 매력적이었다. 눈을 조금만 낮추고 잘만 이용하면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에 내 집 마련도 가능했다. 누구나 그 나이 때 수입이 그리 크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첫 주택 구입에는 이만한 금융상품도 없었던 셈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근 10년간 소시민의 내 집 마련 걱정을 미약하나마 덜어온 디딤돌 대출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 명목은 가계부채 급증 우려다. 가계부채 급증은 전반적인 소비를 위축시키고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만드는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금리인하기에 돌입 중인 상황에서는 자칫 부동산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정부의 고뇌도 이해가 간다. 문제는 정부 부동산정책에 철학이 전혀 보이지 않고 팔랑귀 마냥 시류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라는 점이다. 범용성 짙은 디딤돌 대출 한도 변경이 사전논의나 이렇다 할 국민적 동의 없이 급작스럽게 변경됐다는 점부터 코미디다. 이후에야 국토부는 반대여론이 생각보다 거세다는 것을 감지하고 디딤돌 대출 규제 결정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동네 구멍가게 메뉴판 바꾸는 것도 아닌데 이 모든 것이 근 사흘 만에 이뤄졌다. 당초 지난 7월 실시키로 한 DSR 규제 2단계 시행 연기도 거의 깜깜이로 실시됐다. 이후 가계부채가 도통 줄어들 기미가 없다 보니 시나브로 규제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도운답시고 특례보금자리론·디딤돌대출 등을 확대해 은연 중 집값 인상을 유도해 온 정부다. 당연히 적은 금액이라도 모아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던 서민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어쩌라는 말인가라는 탄식부터 나온다. 현금부자들이라면 정책이 어떻게 바뀌 건 강남이나 용산 주택 즉시 매매를 하거나 증여를 받으면 그만이다. 가계부채가 걱정된다고 해서 누더기가 되는 것은 애초 서민들의 편의 때문에 만들어진 디딤돌 대출이나 청약제도 뿐 고가주택 보유세나 증여세는 거의 그대로다. 현금 여유가 있는 상위 5%는 정책을 모니터링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고, 서민들은 매번 내 집 마련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결과는 이미 시장 통계상으로도 나와 있다.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거래량은 오히려 감소했고, 집값 상승폭은 둔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강남 3구나 마·용·성 지역 단지 청약경쟁률은 많게는 수천대 1까지 오르고 있다. 엄밀하게 작금의 서울과 수도권 집값 인상 추세를 유지하는 것은 해당 단지 청약 열풍뿐이다. 서민들이나 지역주민들은 예측 불가능한 대출정책에 거래를 보류하거나 목숨 건 '영끌'을 하는 와중에 시세차익을 노리는 현금부자들만 신났다는 의미다. 부동산 정책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표관리를 의식한다는 듯한 오해가 생기는 순간 그 정부의 실패로 귀결됐음은 역대 정부들이 증명해 왔다. 필드시절 들었던 국내 모 부동산학자의 원론적인 일성이 귓가에 맴돈다. “자신 없으면 그냥 시장에 맡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