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영파워’ 내세운 파격 인사 단행…속내는
경제 불확실성 지속에 ‘세대교체’ 나서 인사적체 해결 및 기업문화 쇄신 효과도
매일일보 = 김혜나 기자 | 대기업들이 젊은 인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파격적인 인사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지속하는 만큼, 나이와 경력보다 성과 중심의 인사 원칙을 주요시한 결과다. 동시에 기업 혁신의 의지를 외부에 드러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24일 한국CXO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1970년 이후 출생한 오너가 임원 318명 중 회장 직위인 인원(총수 포함)은 31명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30명은 공식적으로 ‘회장’ 직위를 기재하고 있다. 여기엔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도 포함된다. 1970년대생 회장으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1970년생)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1972년생)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1972년생)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1973년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1976년생) △구광모 LG그룹 회장(1978년생) 등이 있다.
50명이 넘는 이번 조사 대상 부회장급 임원 중에서는 올해 50세인 1974년생이 7명으로 가장 많았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김석환 한세예스24홀딩스 △임주현 한미약품 △서태원 디아이동일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이 같은 해 태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1970년대 출생자들이 회사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인사적체를 해소하려는 방안으로도 풀이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조사에 따르면, IT 기업들의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20대 직원 비율은 2021년 34.2%에서 2023년 28.9%로 하락했고, 50세 이상은 16.6%에서 19.8%로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40대 이상 직원 수가 20대 직원 수를 초과했으며, 직원 3명 중 1명이 간부급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인이 기업 461곳을 대상으로 한 ‘정년 연장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년 연장이 부정적이라고 답한 기업들은 그 이유로 ‘청년 및 신규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44.1%)’를 가장 많이 꼽았다. ‘고령자 인사 적체로 기업문화에 악영향이 있어서(41.9%)’, ‘기업 분위기가 보수화돼서(35.5%)’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장에선 이미 인사적체가 만연한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인위적인 인원조정이 어려운 만큼 기업들은 고액의 위로금을 내세워 고령 근로자의 퇴직을 유도하기도 한다. SK텔레은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기존 5000만원이던 퇴직위로금을 최대 3억원까지 상향했다. KT는 퇴직금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희망퇴직 보상금을 기존 최대 3억3000만원에서 4억3000만원으로 인상했다.
무엇보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며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해진 만큼 차별화된 성장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이러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젊은 임원들을 요직에 앉혀 위기를 돌파한다는 목표로 풀이된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최근 젊은 오너들은 경영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해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사장과 부회장까지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초스피드 승진이 이뤄지는 배경에는 나이가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핸디캡을 높은 직위를 통해서라도 조직을 빠르게 장악하고, 사업을 속도감 있게 이끌어감과 동시에 대외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인 다른 기업 오너와 인사의 격을 어느 정도 맞추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