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판 중처법’ 시행 임박… 은행권 진땀

내달 1일부터 책무구조도 도입 시범운영 금융사고 발생 시 CEO 책임 물을 수 있어

2024-10-28     최재원 기자
5대

매일일보 = 최재원 기자  |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 시기가 임박하면서 5대 시중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조기에 제출하는 금융사를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도입이 시범운영된다.

책무구조도란 지배구조법에 따라 금융회사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사전 특정해두는 제도로,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에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구현한다. 임원별로 책무의 상세내용을 기술한 문서인 ‘책무기술서’와 임원의 직책별 책무체계를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표인 ‘책무체계도’로 구성된다.

금융당국 해설서는 ‘금융회사 또는 금융회사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집행·운영에 대한 책임’으로 책무를 규정했다. 관리조치를 미이행 시 내부통제 책임을 최고경영자(CEO)에게도 물을 수 있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과 금융지주의 책무구조도 법정 제출기한은 내년 1월 2일이지만, 금융당국은 내달 1일부터 시범운영을 실시하기 위해 이달 말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내부통제와 개인채무자 보호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각 KB책무관리실과 개인채무조정전담팀을 신설했다. 준법감시인 산하 KB책무관리실은 △책무 관련 제도의 기획·운영 △책무 이행 점검과 책무 관리시스템 운영·관리 △내부통제위원회 운영·지원 등을 맡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초부터 책무구조도 기반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준비해왔다. 이후 올해 초 공포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하위 규정 내용을 완성하고 지난달 ‘내부통제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특히 각 임원의 책무 규정 외에도 본점·영업점 부서장들의 효과적 내부통제·관리를 위한 ‘내부통제 매뉴얼’도 별도로 마련했다. 부서장에서 은행장까지 이어지는 ‘책무구조도 점검시스템’도 도입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 TF를 구성해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작업에 착수한 뒤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받는 임원과 관련 본부 부서장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설명회를 실시하는 등 준비작업을 해왔다.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아 준비하고 있다”며 “10월내 이사회 의결을 거쳐 금감원에 제출하고, 구체적 시스템 정비가 되는 시기는 12월이며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시스템 전산을 구축하는 단계이며 법률 검토 등은 완료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이처럼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에 나선 것은 당국에서 부여하는 인센티브 때문이다. 시범 운영 기간에 책무구조도를 제출 및 시행하면 금융당국이 컨설팅 및 제재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범운영 중 금융사가 소속 임직원의 법령 위반 등을 자체 적발한 경우에도 제재를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자칫 개인의 일탈로 CEO 등 임원들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그간 금융권에서는 제출 시점부터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책무구조도 제출을 꺼려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사고가 잇따르자 이를 의식한 금융권이 당국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신청 기한에 임박해 무더기로 제출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