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환 방파제·주거복지 재원 동원한 세수 펑크 돌려막기, 근본 대책은
2024-10-31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정부가 올해 예상보다 큰 29조 6,000억 원 규모의 세수 펑크를 추가 국채 발행 없이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4조~6조 원, 공공자금관리기금 4조 원, 주택도시기금 2조~3조 원 등에서 최대 16조 원이나 끌어다 쓰는 것을 포함해,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 6조 5,000억 원가량을 집행 유보하고, 통상적 예산 불용액(不用額) 최대 9조 원가량을 활용해서 나머지 부족분을 메우겠다고 한다. 지난해도 56조 4,000억 원의 역대 최대 세수 결손이 발생했을 때도 기금을 차용 헐어 쓰더니 올해까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이 현실화하자 정부 기금을 총동원해 ‘돌려막기’에 나선 것이다. 세수 기반을 확충하거나 재정 지출 누수를 막는 정공법 대신 꼼수를 동원해 세수 부족을 충당하는 일이 계속해 반복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0월 28일 국회에 보고한 ‘2024년 세수 재추계에 따른 대응 방안’에서 올해 세수 결손 예상액 29조 6000억 원을 충당하기 위해 기금·특별회계에서 14조~16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수 부족에 대응해 투입하는 공공기금 가운데 외평기금이 최대 6조 원으로 가장 많다. 특히 외평기금은 환율이 급등락하면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환율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외환 방파제’다. 작년에도 세수 결손을 메우는 과정에서 환율 급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쌓아둔 외평기금에서 20조 원을 끌어다 썼는데 올해도 또다시 이 기금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지난달만 해도 외평기금을 추가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다가 이번에 말을 바꾼 것이다. 정부는 외평기금 규모가 270조 원이 넘어 세수 부족분을 메워도 외환시장 대응 여력이 충분한 데다 지방교부세 삭감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외환 방파제’인 외평기금에 손대는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망각한 발상으로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원·달러 환율이 최근 급격히 상승(원화 가치 하락)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에 바싹 다가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다음 달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까지 높아진 영향이 크다. 특히 우크라이나·중동 전쟁발(發) 지정학적 리스크로 원·달러 환율이 요동칠 우려가 커지는 데 ‘외환 방파제’를 허물면 당연히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6%로 낮아져 우리 경제가 고물가 수렁에서 간신히 벗어나는가 싶더니 고환율이란 또 다른 복병을 만나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외평기금을 헐어 쓴다는 것은 정상적인 재정 운영이 아니다. 지난 10월 28일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90원 선 전후로 등락을 거듭하다가 오후 3시 반 기준 1,385원을 기록했다. 영업일 기준으로 이틀 연속 장중 1,390원대에 오른 것이다. 원·달러 환율 1,400원은 외환 당국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린다. 과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중대한 위기를 맞을 때마다 환율이‘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긴장감을 더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외환 보유액은 4,000억 달러 이상으로 세계 9위 수준이어서 외환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세수가 부족하다고 외평기금에 손을 대는 건 도저히 명분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국회 예산정책처도 이미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라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 바 있다. 주택도시기금도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하지만 여유 자금은 2021년 말 49조 원에서 올해 6월 말 15조 8,000억 원으로 3분의 1이 넘게 줄었다. 또 지방 재원 삭감과 예산 불용은 경기 불황기에 위태로운 민생을 보듬어야 할 정부의 책무를 스스로 방관(傍觀)하고 방기(放棄)하고 방치(码放)하는 처사의 동인(動因)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청약저축·국민주택채권 등으로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에서도 최대 3조 원까지 동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 등 주거복지 사업에 쓰이는 기금을 세수 펑크 대응에 활용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는 뇌관 중의 뇌관이다. 더군다나 청약통장 가입자의 이탈로 주택도시기금 여유 자금 감소까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작금의 우리 경제는 경기 침체의 문턱에 들어선 가운데 믿었던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지난 2/4분기 역성장에 이어 3/4분기에도 연속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24일 발표한 ‘2024년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1% 성장(전 년 동기 대비 1.5% 성장)에 그쳤다. 이렇듯 경제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으로 부진을 면치 못함에 따라 정부의 연간 성장률 전망치 2.6%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해졌고, 한국은행 전망치 2.4%도 수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올해 예산안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뀌었다. 당초 예산안을 편성할 때부터 세수가 작년보다 33조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입보다 지출이 92조 원이나 많은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세수가 부족하면 국채 발행을 통해 추경을 편성하거나 세입 확충 방안을 내놔야 하지만 건전재정을 앞세운 현 정부는 이번에도 추경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래 놓고 꺼내든 카드가 기금 돌려막기라는 임시방편 땜질식 대책이다. 정부가 올해(1~3분기) 들어 한국은행에서 빌려 쓴 급전도의 누적액이 152조 6,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42조 1,000억 원을 상환해 3분기 말 기준 잔액은 10조 5,000억 원이다. 이쯤 되면 ‘돌려막기 중독’을 넘어 가히 ‘마통 중독’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재정이 부족할 때 단기 대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국채 발행과 한국은행 대출이 있다. 이중 한국은행 단기 차입은 개인이 자금의 임시 융통을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정부가 한국은행으로부터 너무 많은 돈을 자주 빌리면 유동성을 늘려 물가를 올릴 수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올해 1~9월 정부의 일시 차입금 누적액이 종전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기록 117조 6,000억 원을 훌쩍 넘었다. 대출 횟수도 총 75회로 지난해 65회를 10회 이상 웃돌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행에 갚아야 할 이자도 크게 늘었다. 올해 3분기 말까지 누적 대출에 따른 이자액은 1,936억 원으로 역시 지난해 연간 이자액 1,506억 원을 돌파했다. 반도체 수출이 주춤해지며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쇼크 수준인 0.1%를 기록했고, 내수 부진과 높은 장바구니 물가로 서민·자영업자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 불황일 때는 정부가 확장재정을 통해 경기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경직된 ‘재정건전성 신화’에 매몰돼 강력한 긴축 재정을 펴고 있는 데다 이미 잡혀 있는 예산까지도 불용을 운운하며 집행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서둘러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경기 활성화 재원으로 활용해도 신통찮은 마당에 이미 국회를 통과한 예산마저 집행하지 않고 불용하겠다는 건 입법부를 무시한 ‘행정독주’라 오해와 곡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상속세 개악 등 부자들을 위한 감세로 무너진 세수 기반을 바로 세워야 한다. 세수 구멍을 메우는 땜질·편법과 임시변통으론 위기를 지연시킬 뿐 더 큰 위기를 부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병사 월급은 월 135만 원에서 165만 원으로 30만 원 올리고, 0세 아동 부모 급여는 월 7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30만 원 올리고, 노인층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액도 33만 4,000원으로 인상하면서 노인 알바 일자리도 사상 최대인 103만 개로 늘리는 등 선심성 정책을 대거 포함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국채를 덜 찍고 세수 부족을 메우려다 보니 각종 기금에 손을 벌리는 꼼수와 무리수가 등장하는 것이다. 정부가 편법 재정운용 지적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세수 추계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세수 오차는 4년 연속 발생했으며, 그 규모가 지난해는 60조 원, 올해는 30조 원에 달했다. 연말이면 1,200조 원을 넘는 국가채무를 감안해 적자 국채 발행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이자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하지만, 돌려막기가 일상이 되고 급전을 끌어다가 나라 살림을 꾸리는 건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다. 정부의 세수 추계 정확도를 높이는 한편 근본적인 재정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빚더미가 커지는 것은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이 계속되는 한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지구촌의 대다수 선진국이 국가 부채·재정 적자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강제로 과잉 지출을 막는 것이다. 우리도 당연히 법제화가 시급하다. 우리 경제 상황이 저성장 기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기금 돌려막기에서 벗어난 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조속히 강구할 필요가 있다. 변칙과 편법 대신 정공법으로 세수 구멍을 메우고 경기 침체에 대응할 ‘재정 실탄’을 챙겨야만 작금의 세수 펑크 돌려막기를 극복할 수 있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