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인중개사를 못 믿겠는데 내 집 마련 어쩌지”
2024-11-03 김승현 기자
매일일보 = 김승현 기자 | “요즘 공인중개사 아닌(무자격자) 사람이 사무실에 앉아있는 경우도 많고, 전세사기에 가담한 이들도 있는데 차라리 플랫폼 직거래나 월세를 알아보는 건 어때?”
이달 초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여자친구와 동네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지나며 나눈 말이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등 부정적인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자 이들을 배제한 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수수료도 아껴보겠다는 다소 위험한 상상을 해봤다. 지난 2023년 이른바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에 몇몇 공인중개사가 연루됐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건축 사기꾼 남 모 씨 범죄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는 9명이다. 이들은 전세를 구하고자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방문한 피해자들에게 일당의 주택을 ‘안전한 집’이라고 소개하며 회유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줬다. 통상 일반인은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 진단을 받고 병을 치료한다. 부동산을 매매할 땐 공인중개사를 찾아 계약 관련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거래까지 마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가 깨지며 이러한 거래 관행이 약해진 것이다. 공인중개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매매 여력 없는 청년을 중심으로 월세 거래도 늘었다. 전세보다 비용 부담이 크지만, 매달 집주인에게 비용을 내는 가장 단순하고 안전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전국 오피스텔 전·월세 거래 10만5978건 중 월세 거래량은 66%(6만9626건)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p 늘었다. 빌라의 경우 1분기 기준 수도권 소형(60㎡ 이하) 거래 중 월세 거래량은 2만7510건으로 54.1%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지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안전장치도 부실하다. 현 시행 중인 부동산 공제보험은 공인중개사 잘못으로 주택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인중개사협회나 보증보험회사가 피해자에게 피해액을 지불하는 상품이다. 몇몇 공인중개사사무소 입구에 ‘손해배상책임보증’(2억원)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전세사기 앞에선 이마저도 소용없다. 일반인의 경우 전·월세 보증금이 2억원 미만이면 계약에 문제가 있더라도 피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해당 보험이 계약 한 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1년간 중개업소에서 발생한 책임 배상 한도액이라는 점이다. 만약 전세사기 5건이 발생했다면 피해자들이 2억원을 나눠 받을 수밖에 없고 피해자가 늘면 금액은 더 줄어든다. 기자에게 공인중개사 이미지는 꽤 좋은 편이다. 지인이 강동구에서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이기도 하거니와 지난 2020년 지인 집을 구하던 중 남영동 공인중개사사무소 사장에 몇 차례나 도움을 받았다. 남영역과 숙명여대 사이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던 공인중개사는 “이 금액으로 이곳에 집을 얻기란 어렵다. 출근 지역과 특별히 원하는 혹은 피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알려달라. 내 구역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세거나 조건이라면 알려주겠다. 꼭 우리 지점이나 내 지인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며 친절을 베풀었다. 부동산 전문가인 공인중개사가 신뢰를 잃고 이들이 역할이 줄면 자칫 더 큰 피해(전세사기 등)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더 늦기 전 정부는 예방책을 마련하고 무자격자에 대한 징계 등 점검에 나서야 한다. 공인중개사협회 등 관계자는 공인중개사 역할이 무엇이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재교육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