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 현실화···11년 만에 총리 대독
尹-명태균 녹취록·김건희 특검 등 野 공세 작용한 듯 22대 국회 개원식도 불참···野 "대통령 자리가 장난인가"
2024-11-03 이태훈 기자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4일 예고된 내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의 통화 내용,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등을 중심으로 고조되는 야당의 공세가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패싱'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대독하는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취임 첫해와 2년 차까지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직접 국회 본회의 연단에 섰던 윤 대통령은 이번엔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연설문 대독을 맡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부터 이어져 온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해온 관례가 깨지게 된 것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할 예정인가'라고 묻자 "현재로서는 국무총리가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시정연설이 매년 있는 것은 아니고 총리가 대신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하지 않고 한 총리가 대독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민주당은 최근 윤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의 통화 녹취록을 폭로하며 녹취 내용이 사실일 경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또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을 오는 14일 예고된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열렸던 국회 개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고 나서 대통령을 초대하는 것이 맞다"며 개원식 불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시정연설은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하는 연설을 의미한다. 주로 예산안 편성 방향성을 설명하고 국회의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다.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 시작했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직접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취임 첫해만 대통령이 직접하고 이후에는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현직 대통령이 매년 직접 시정연설에 나서면서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현직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이어졌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이 예상되는 데 대해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회 개원식 불참 기록을 남기더니 이번에는 대통령 시정연설 패스다"라며 "대통령 자리가 장난인가. 김 여사가 하라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민규 개혁신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와의 갈등이 걱정된다면 현장에서 대화로 푸는 것이 정도이고, 대통령실을 둘러싼 의혹들이 마음에 걸린다면 국민 앞에 털고 가는 것이 원칙"이라며 "백날 도망쳐도 그곳에 낙원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무총리실은 윤 대통령이 이번 시정연설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한 총리의 연설문 대독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