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탈출구 없는 악순환의 늪…‘좀비기업’ 역대 최대치 도달
기업 10곳 중 4곳 ‘취약기업’ 판정 고금리 지속에 기업 금융부담 상승 대외 리스크·내수부진 장기화 영향
매일일보 = 김혜나 기자 |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내외 리스크로 인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지속되며 좀비기업이 크게 늘었다. 한계기업을 일컫는 좀비기업은 기업의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악화된 기업을 뜻한다. 코로나19 이후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며, 대출을 받은 기업들의 금융 부담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의 ‘2023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취약기업’ 비중은 42.3%다. 10곳 중 4곳이 취약기업인 셈이다. 2009년 통계 편제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22년(42.3%)과 동일한 수치다.
지난해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기업(93만5597개)의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191.1%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348.6%)보다 157.5%포인트(p) 급감한 수치로, 2009년 통계 편제 이후 최저치다.
이자보상비율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들이 빚을 갚을 능력이 나빠졌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수익성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자보상비율 500% 이상의 기업 비중은 2022년 34.2%에서 지난해 30.5%로 감소했다.
이자보상비율의 보조지표인 수정 영업자산이익률 역시 2022년 3.8%에서 지난해 1.8%로 하락했다. 수정 영업자산이익률은 영업이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금액을 영업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지난해 수정 영업자산이익률 0% 미만(영업이익보다 이자비용이 큼) 기업 수 비중은 47.8%로, 2022년 47.4%보다 소폭 상승했다.
아울러, 조사 대상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2022년보다 나빠졌다. 매출액 증가율은 전년 15.1%에서 -1.5%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지난 2010년 통계 편제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업종별로 제조업은 전자·영상·통신장비(5.0%→-14.5%), 코크스·석유정제(66.6%→-13.8%) 등을 중심으로 매출액이 2.3% 감소했다. 전자·영상·통신장비는 정보기술(IT) 기기와 서버 수요 둔화 등으로 반도체 수출이 줄었고, 코크스·석유정제는 국제원유 가격 하락으로 수출단가가 내린 영향을 받았다. 비제조업 역시 도소매업(12.1%→-2.1%), 운수·창고업(25.5%→-9.0%)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매출액이 0.9% 줄었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도 2022년 4.5%에서 지난해 3.5%로 하락했다. 2009년 통계 편제 이후 가장 낮다. 제조업의 경우 3.3%로 2022년 5.7%보다 내렸다. 반면 비제조업은 2022년 3.6%에서 지난해 3.7%로 소폭 상승했다.
파산을 선택하는 기업도 다수 발생하는 상황이다.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9월까지 전국 누적 법인파산 건수는 1444건으로 1213건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19.0% 늘면서,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내수부진을 비롯해 지난 7월 말 발생한 ‘티메프 사태’ 등이 겹치며 경영난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이라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국내 기업구조조정 제도는 크게 법원이 주도하는 공적 구조조정 제도인 ‘회생절차’, 채권금융기관 주도로 이뤄지는 ‘워크아웃 제도’로 구분된다. 금융안정위원회(FSB),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 등은 각 기업이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다수의 선택지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업들은 그간 내수 회복을 통한 영업이익 증가를 기대했지만 내수 회복세는 미지수다. 전체 중소기업 중 수출에 나선 기업은 10% 가량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내수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야기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퇴출되지 않으면 신규 기업들에 대한 투자 역시 활발해지기 어려운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