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갈수록 지능화하고 교묘해지는 딥페이크 범죄, 무관용원칙 발본색원을

2025-11-13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정부가 지난 11월 6일 인공지능(AI)을 악용한 ‘딥페이크(Deepfake │ 불법 합성물)’ 성범죄 대응 강화방안을 내놨다. 지난 8월 대학가는 물론이고 초·중·고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난 뒤 나온 범정부 대책이라 뒤늦은 감(感)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동안 사건이 터질 때만 반짝 경계심을 갖는 일이 반복되고 일과성 땜질식 미봉책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앞서 ‘엔(N)번방 사건’ 이후에도 정부 대책이 쏟아졌지만, 디지털 성범죄가 더 교묘한 수법으로 지능화해 활개 쳤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딥페이크(Deepfake)란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기존 사진‧영상을 다른 사진‧영상에 겹쳐서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기술을 말하며, 딥페이크 성범죄란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자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합성하거나 해당 합성물을 유포하는 행위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의 적용을 받는다.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인 ‘사이버플래싱(Cyber flashing │ 자신의 나체 사진이나 영상 등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까지 확산 중이라 더욱 우려스럽다. ‘사이버플래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아무에게나 손쉽게 콘텐츠를 전송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 길거리에서 벌어지던 ‘바바리맨’들의 범죄가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딥페이크’가 아는 사람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지인(知人) 능욕(凌辱)’이라면 ‘사이버플래싱’은 모르는 사람에 대한‘묻지 마 폭력’에 가깝다. 흉기를 소지한 성범죄자가 온라인을 휘젓고 다니는 셈인데 어린이 청소년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심히 크다. 이번 성범죄 대응 강화방안은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에만 한정했던 위장 수사를 성인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검거 전이라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하며, 텔레그램 등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들도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 유통을 방치(放)하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 골자다.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렸던 디지털 성범죄 ‘엔(N)번 사건’이 터진 지도 무려 5년이나 흘러갔는데 이제야 수사제도와 기법을 고치겠다니 뒷북대응이라는 비난과 함께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感)이 없지 않지만 늦어진 만큼 신속한 속도감과 강력한 실행력으로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총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11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 ▷강력하고 실효적인 처벌, ▷플랫폼 책임성 제고, ▷신속한 피해자 보호, ▷맞춤형 예방 교육·홍보 등 4대 분야 10개 과제를 역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딥페이크 성범죄가 주로 이뤄지는 텔레그램 등 국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성(性)착취물을 차단하는 ‘선 삭제 후 심의’도 추진한다. 아울러 정부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제작·유통이 심각한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예방 교육을 더 늘리고 홍보를 강화한다. 2021년 통계 작성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리, 피해자 지원 건수는 4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하였고, 특히 피의자·피해자 중 10대 비중이 높은 상황(피의자 10대 비중 73.6%)이며, 범죄라는 인식도 부족하다. 지난달 중순까지 올해 검거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474명 가운데 80%가 10대 청소년이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대상도 유명인뿐 아니라 중·고교, 대학, 군 등 전방위로 퍼졌다.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 범죄가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벌어지다 보니 수사는 매번 헛발질에 그치기 일쑤였다.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만큼 온갖 신종 범죄 수법이 기승을 부릴 게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무엇보다 범죄영상물의 온상인 텔레그램 등 플랫폼 규제를 강화한 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시정명령과 과징금 및 제재를 받게 된다. 진작에 서둘렀어야 할 일이다. 피해자가 삭제 요청을 하는 경우 24시간 내 먼저 차단하고 그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방안도 반길 일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접수된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 건수 94만 건 가운데 27.69%인 26만 건 이상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 사회는 냉정하게 뒤돌아봐야만 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수백만 원씩 돈을 들여 사설 업체를 통해 지우는 일까지 벌어졌다니 당국은 국가의 책무가 무엇인지 통렬히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방안이 제대로 작동되고 소기의 성과를 거양(擧揚)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실효적 강력 후속 대책이 뒷 따라야만 한다. 정부는 정보통신망법과 같은 국내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텔레그램 등 국외 사업자에게도 성범죄물 유포 등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태료 부과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이런 규제가 실행력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구체적인 세부이행계획이 나와야만 한다. 이와 함께 국회 차원의 신속한 입법 추진도 필요하다. 딥페이크 범죄 수사 목적의 통신 감청을 허용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등 찬반 논란이 큰 과제들도 여야가 서둘러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딥페이크 범죄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수익만 좇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해 강력한 제재도 필요하다. SNS는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만든 추천 알고리즘으로, 사실상 청소년을 중독시키고 있다. 조회 수와 이용 시간이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여서다. 성적 내용과 폭력 등 유해 콘텐츠에 오래 노출된 청소년은 우울감은 물론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다고 한다. 유튜브가 자율 규제에 동참하는 게 우선이지만, 정부도 청소년 SNS 보호 방안을 서둘러 정비해야 할 과제 앞에 무거운 책임감을 지니고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지난 10월 30일 동문 등을 상대로 여성 수십 명의 사진으로 허위영상물을 만들어 유포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주범 박모 씨에게 법원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한, 박 씨로부터 사진을 넘겨받아 허위영상물을 제작한 강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박 씨에 대해 구형한 징역 10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2021년 7월부터 지난 4월까지 서울대 동문 12명 등 여성 61명의 사진을 소재로 딥페이크 성착취물 2,000여 개를 제작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이례적인 중형 선고로 사회 구석구석에 퍼진 성범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지난 9월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만 해도 처벌하고 편집·유포 형량도 7년으로 강화됐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딥페이크 범죄는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격을 말살하는 무도하고 끔찍한 범죄이며, 이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 전반의 각성이 있어야만 정부 대책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무관용(無寬容) 원칙으로 반드시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할 악질적 범죄로 다시는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서둘러 뿌리 뽑아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