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반컵' 함께 채운다더니...정부, 日 '강제동원' 외면에 사도광산 별도 추도식

24일 日 민간·지자체 추도식 韓 정부 불참 '반쪽짜리' 尹 정부 한일관계 성과 '머쓱'...野 "최악 외교참사"

2025-11-25     조석근 기자
사도광산

매일일보 = 조석근 기자  |  정부가 25일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서 강제 노역한 조선인 노동자를 일본 정부와 별도로 추모하는 추도식을 열었다. 당초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한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매년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추도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정작 '강제동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가운데 일본측 행사가 시민단체와 지자체 차원으로 격하되면서 정부가 별도로 추도식을 개최하게 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복원을 외교·안보 분야 주요 업적으로 강조해온 만큼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부는 25일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강제동원 조선인들에 대한 추도식을 개최했다. 한국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 등 30여명이 참석했으며 공식 일정은 10여분 만에 종료됐다. 박 대사는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 한국인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추도사를 통해 전했다. 당초 유족과 정부 대표는 전날 일본의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23일 불참을 통보했다.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상 정무관(차관급)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문제가 됐다.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전력도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당일 추도사에서도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등을 언급하며 강제동원이 사실상 태평양전쟁 상황에서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추도식의 추도 대상을 '조선인 노동자'가 아닌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로 규정했다. 주최 자체도 중앙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와 지자체로 떠넘긴 가운데 당초 7~8월로 예상된 추도식 시기도 계속 미뤄왔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도 "우리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이번 추도식 사태와 관련 정부의 그간 대일외교 기조가 불러온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3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두고 '제3자 변제' 해법을 제시하는 등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에 대한 선제적 양보를 강조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용인한 가운데 대북 정책을 포함한 동아시아, 인도·태평양 등 안보 현안에서 한미일 공조를 '금과옥조'로 삼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의 "물컵에 비유하면 물이 절반 이상 찼다"는 발언이 한일 관계의 상징적 표현으로 자리하기도 했다. 야당에서도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처참한 외교로 사도광산 추도식이 강제동원 피해노동자 추모가 아니라 일본의 유네스코 등재 축하행사로 전락했다"며 "1500여명 조선인 강제노동은 사라지고 대한민국 정부 스스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최악의 외교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