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뿔났다, 박근혜 정부 각오해라”

학부모들 “카네이션 달지 않겠다”…참사 진상규명 및 정부·언론 사죄 촉구

2015-05-08     이선율 기자

[매일일보 이선율 기자] 어버이날이자 세월호 참사 발생 23일째인 8일 오후 전국 학부모들이 “참사의 아픔 속에서 카네이션을 달 수 없다”며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통령과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원들과 시민들은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아이들을 죽인 것은 사고가 아니라 어른인 우리의 이기심이 죽인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실시, 정부와 언론의 진정한 사죄를 촉구했다.참교육학부모회 박범이 회장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배바닥을 구르던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한 어른들은 카네이션을 달 수 없다”며 “그저 어른말씀 잘 듣는 게 모범생이라고 가르친 기성세대가 어떻게 카네이션을 달 수 있는가. 사람 생명을 이토록 가볍게 여기는 정부와 책임자들 모두 카네이션을 달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박범이 회장은 “이번 사고는 한국사회가 정신을 못 차리고 탐욕에 눈이 멀어 만든 인재”라며 “아이들이 결코 안전하지 않고, 어른이 결코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내 모습이라는 게 다 드러나 너무 수치스럽고 슬프다.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새로운 세상,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고문은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고 이후에 정부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을 구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박경양 고문은 “헌법 1조에도 나와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는데, 말대로 행동했다면 정부 관계자들과 공무원들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을 묻는다”고 지적했다.광주에서 올라온 한 학부모는 “뱃속, 바다속에 있었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생각하면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다. 밥을 먹다가도, 차를 타다가도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며 “침몰하고 나서도 1시간 반 동안이나 시간이 있었는데도 왜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했는가.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안타깝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경남 진주에서 올라온 김미선씨는 “이번 사고는 세월호 대참사, 학살"이라며 ”아직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는데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시는 이런 일이 부끄러운 어른들에 의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영주 동북부지회장은 “유가족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방관하고 국민주권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며 “언론이 진실을 호도할 때 우리는 눈감았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남영주 회장은 “아이들이 끝까지 죽어가면서 카톡에 남긴 말이 ‘엄마, 엄마의 자식으로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며 엄마들이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겠는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하고, 그 끝이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하야시켜야 한다”고 규탄했다.참교육학부모회 이경자 전남지부장은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잊으라고만 한다”며 “팽목항에 와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웃는듯한 표정으로 배를 타는 것을 봤다. 세상에 아이들을 그렇게 죽이고도 뻔뻔한 얼굴로 배를 탈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이경자 지부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그곳에서 한명이라도 건지라고 모든 잘못은 정부에서 다 책임지겠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들 잘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를 줬다. 책임자인 대통령이 지금도 사과한마디 하고 있지 않다. 이 나라에 산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열손가락이 다 짓물려지도록 불렀을 엄마, 아빠라는 외침. 우리는 이번 대참사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외쳤다.학부모들의 기자회견 발언 이후 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추모시가 낭송과 ‘천개의 바람이 되어’란 노래를 추모하는 합창이 이뤄졌다.참교육학부모회는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으로 달지 못한 카네이션을 종이배에 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한 학부모가 자리를 이탈하려는 시민들과 학부모들에게 “여러분, 어디로 가시나요. 우린 청와대에 가야한다”며 즉각 행동하자고 호소했다.“시민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막지 말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수십명의 경찰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진입장벽을 막았고, 철벽장비에 격분한 학부모들은 “우리도 시민이다”며 청와대에 가게 해달라고 항의했다.이에 경찰은 ‘집시법 16조 4항’ 위반(신고범위 일탈)이라며 학부모들을 저지했고, 결국 카네이션이 담긴 종이배는 청와대에 전달되지 못했다.참교육학부모회는 서울광장으로 발길을 돌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했다.한편 참교육학부모회는 시민들과 연대해 지난 7일 오후부터 서울 창동역을 출발해 8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광화문~서울광장 분향소로 이어지는 1박2일간의 촛불 행진을 진행했다.다음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했던 착한 아이들아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고기다리라고 하니 믿고 기다리며구명조끼 나눠 입고 가만히 기다리던 착한 아이들아너희들은 할 일 다 하고 기다렸는데 어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구나.순종적으로 어른들의 말만 믿고 따라간 너희들,누가 너희들을 이렇게 가르쳤니너희의 본능과 판단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데어른들의 왜곡된 교육으로 너희의 손과 발을 다 묶어버렸구나차디찬 물속에서 끝까지 어른들이 구해올 거라고 믿었던제대로 펴 보지도 못한 300여개의 꽃송이들아누가 너희들을 이렇게 죽게 만들었니정부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아이들아어른들의 탐욕으로 만든 세상에서왜 너희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너무도 슬프고 원통하다방송을 통해 너희들의 동영상을 보았단다.헬리콥터 소리에 안심하고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라”는 안내방송에 “네”라고 합창하던너무나 천진하고 고운 아이들아너희들이 구해줄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제일 먼저 탈출했고해경과 해운업계의 협작으로 구조다운 구조가 이뤄지지도 않았었단다그럼에도 대다수의 어른들은 “전원구조”,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구출하고 있다”는 언론의 목소리를 단순히 믿고 있었지날이 가면 갈수록 양파껍질처럼 나오는 정부와 해경, 해운업계의 안일한 대처와 비리에, 왜곡된 언론보도에 그제야 이것이 사고가 아니라 그들이 부모 보는 눈앞에서 시간 끌어가며 죽인 학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사고나 병사라고 슬픔이 작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억울하고 한이 깊지는 않을 거야약속할게, 이제는 어른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련다이렇게 앉아서 하릴없이 눈물만 흘리는 것은 그만하려고 해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엄청난 비극의 원인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지 치열하게 고민할게.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를 넘어 이제는 행동하는 어른이 되기로 다짐할게.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도록 노력할게.이제는 돈보다 생명을 우선으로 여기는 세상을 만들거야이제는 세상의 온갖 비리와 부패에 내 일 아니라고 눈 감지 않을 거야.에미의 뱃속에서 고이 열 달을 품어 낸 그 정성을,첫 걸음마를 떼기 위해 열심히 붙잡아 세우던 그 정성을,초등학교 입학식 때의 그 설렘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차마 안녕히 잘 가라는 말도 고이 보내주겠다는 말도 할 수가 없지만목 놓아 외치고 싶다 너희들을 살려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