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재심으로 진실 규명 나선다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한 의혹 증폭, 법적 공방 가열 피고인 "허위 자백 강요" 주장, 검찰은 "기존 판결 정당" 반박 박준영 변호사, "검찰의 시나리오 조작" 주장하며 무죄 입증 나서

2025-12-03     손봉선 기자

매일일보 = 손봉선 기자  |  15년 전 순천을 뒤흔든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이 재심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사건은 두 명의 사망과 두 명의 중상이라는 비극을 낳았고, 백 모 씨(74)와 그의 딸(40)이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받으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의 중대한 의혹이 제기되며 법적 논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3일 광주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이의영)는 백 씨 부녀의 재심 첫 공판을 열었다. 2009년 사건 당시 검찰은 백 씨 부녀가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어 아내 최 모 씨와 마을 주민 한 명을 살해하고, 다른 두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자백을 주요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백 씨 부녀는 이후 자백을 번복하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특히 이번 재심을 통해 사건 당시 검찰의 수사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백 씨 부녀를 강압적으로 조사하고, 유리한 증거를 은폐했다고 강조했다.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은 문맹 상태거나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진 피고인들의 취약성을 악용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며 "이번 사건은 검찰이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라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백 씨 부녀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다수의 증거를 제시했다. 당시 백 씨가 막걸리를 구매한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부녀의 이동 기록 등은 피고인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했지만 재판부에 제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범행 도구로 지목된 플라스틱 수저에서 청산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재심 첫날 법정에 출석한 백 씨 부녀는 15년 만에 죄수복이 아닌 일반 복장으로 서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백 씨는 "나는 아내와 이웃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당시 수사관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딸 역시 "검찰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위험해진다고 해서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기존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맞섰다. 검찰 측은 "1심에서 무죄가 나온 것은 법리적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시 수사는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피고인들의 진술은 자발적이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유죄를 입증할 추가 증거와 증언을 재심에서 다시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재심 개시는 광주고법이 피고인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이루어졌다. 법원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누락되고, 피고인의 진술이 강압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임의성이 결여된 진술을 주요 증거로 삼고, 공정성을 잃은 수사를 진행한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심 공판에서는 사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와 수사관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들의 증언과 함께 증거물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이루어지며, 사건의 진실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 간의 치열한 법적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다음 재판은 2024년 2월 11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추가 증거 검토와 증인 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재심은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한 사회적 의문을 재조명하며, 대한민국 사법 체계의 신뢰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사건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사법 정의를 위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