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너일가 끝없는 추락의 끝은?

100년 기업 두산그룹 해체설 '모락모락'

2006-10-28     권민경 기자

<두산 형제들 '피는 돈보다 진하지 않다'>
<재계 '미스터 쓴소리' 박용성 도덕성 흠집>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아 온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20일 검찰에 출석함으로써 지난 7월 말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지 거의 석 달 여 만에 두산 비리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박 회장은 이날 검찰에서 "인정할 부분이 있으면 인정하고, 나름의 의견이 있을 때는 의견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비자금 조성과 사용에 대해 일부 혐의 내용을 인정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검찰은 박 회장 조사를 끝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보강조사를 거쳐 곧 사법처리 여부를 발표할 계획이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 장수기업, 우애를 강조하며 형제간 그룹 회장직 승계를 통해 가족경영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온 두산그룹은 이번 사건을 통해 그룹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았던 지난 석 달간의 두산그룹 '형제의 난'을 되짚어본다.

두산그룹 비리와 관련한 수사는 지난 7월21일 박용오 전 회장이 형제들의 비자금 조성의혹을 담은 투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박 전 회장은 박용성, 용만 형제가 20년 동안 총 1천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직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사조직 관리, 노조탄압에 사용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냈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진정서를 내기 나흘 전인 7월17일 총수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회장을 박 전 회장에서 박용성 회장으로 교체하는 한편 박용곤 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정원씨를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박 전 회장을 경영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를 계기로 두산그룹의 해묵은 경영권 분쟁과 갈등은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비화됐다. 박 전 회장측은 진정서에서 박용성 회장이 20년간 생맥주 체인점 주식회사 `태맥'이라는 위장 계열사를 운영하면서 350억~45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해 착복했고, 경비용역업체 동현엔지니어링을 자신의 측근 이모씨에게 맡겨 2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만들어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용성 회장이 과실로 부도를 낸 일경개발을 그룹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통해 175억원 이상의 부실을 두산기업에 떠넘겼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박 전 회장은 또 동생인 박용만 그룹 부회장도 주식회사 넵스라는 위장계열사를 통해 두산산업개발의 주방가구 물량, 마루 공사 등 각종 공사를 독식하면서 5년간 비자금 200억원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또한 박용성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는 뉴트라 팍이라는 회사를 미국 위스콘신에 설립해 계열사 자금 870억원을 해외로 밀반출 한 뒤 해당회사는 껍데기만 남긴 채 800억 원대의 자금을 빼돌렸다고 주장해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렇게 해서 박용성 회장 등 형제들이 지난 20년 동안 조성한 비자금은 1천700억원대에 이르고 분식회계도 서슴지 않았다는 게 박 전 회장의 주장이다.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룹회장을 맡았던 당사자가 경영상의 내부비리를 투서하는 등 두산그룹 비리사건은 그야말로 진흙탕으로 빠져들었다.

돈 앞엔 형제도 원수

박 전 회장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형제간에 싸움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송구스럽지만 이번 그룹 회장 승계 건은 막대한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주도한 쿠데타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이어 "형제간의 의를 생각해 지금까지 참아왔으며 가족회의에서 두산산업개발의 독자경영을 건의했다"며 "관계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명백한 진실을 밝혀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에 대해 "터무니없는 이야기" 라며 사실무근임을 주장했고, 박 전회장이 회장 직 이양을 결정한 가족회의의 결과에 반발해 꾸민 것"이라며 법적 대응여부를 고려중이라고 반박했다.

두산그룹 최고 어른인 박용곤 명예 회장은 "박 전 회장의 행동은 가족과 그룹 전체에 대한 반역 행위" 하며 "이제부터 박 전 회장을 두산 그룹에서, 가족 일원에서 제명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취임한지 10년 정도 됐고 은퇴할 시기가 됐으니 금년 말로 회장직에서 은퇴하라'고 말하자 이에 반발해 자신이 지분을 0.7% 가량 보유한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분율이 0.7%에 불과하고 계열 분리가 선친인 박두병 초대회장의 `공동소유, 공공경영'의 원칙에 반하고 그룹 전체의 이익에도 배치되기 때문에 가족회의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이후에도 박용곤 명예회장 주재로 수차례 가족회의를 열었지만 박 전 회장이 뜻을 굽히지 않아 그룹 회장직을 셋째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이양키로 결정했고 박 전 회장이 결국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돌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주위 사람들에게 회장직 이양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 등이 박용곤 명예회장을 사주해 벌인 일이라고 비방하고 있지만 모든 결정은 전적으로 큰형인 박 명예회장의 판단을 다른 모든 가족들이 지지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두산그룹 안팎에서는 박 전 회장이 이처럼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두산산업개발 계열분리 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진 형제간 갈등이 박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직 승계를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됐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박 전 회장은 올해 초부터 두산산업개발을 그룹에서 떼어내 자신과 아들들에게 달라고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은 박 전 회장의 이런 요구를 거절했으며 이 때부터 두산산업개발을 둘러싼 가족간 대립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은 계속 두산산업개발을 요구하며 가족들과 마찰을 빚었고, 마침내 형제들은 가족회의를 통해 그룹 회장직을 박용성 회장에게 넘겨주고 박 전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두산산업개발 양도 거부로 불만이 쌓인 박 전 회장은 전격적인 회장직 이양으로 마침내 분노가 폭발됐고, 이에 따라 박용성 회장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최후의 수를 둔 것이다. 박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분리독립을 요구한 것은 두산 제 4세대로의 지분이동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두 아들이 소외되고 있음을 우려한 것에서 시작됐다. 박용곤, 박용성 회장의 자제들이 ㈜두산의 지분을 늘려가며 제4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비해 박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 ㈜전신전자 대표는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두산과 두산산업개발의 지분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등 경영구도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박 전 회장은 안전책 마련을 위해 두산산업개발 독립경영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금융권, '두산그룹 지배구조 변화 불가피' 해체론 대두

검찰은 지난 석 달 가까이 수사를 벌여 두산 그룹 총수 일가가 조성한 비자금의 사용처를 집중 추궁했다. 이를 통해 박진원 상무가 동현엔지니어링이 조성한 비자금 20억원을 건네 받았고, 두산산업개발이 총수 일가의 이자 대납을 위해 5년간 138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비자금 사용처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황희철 1차장은 "두산 계열사로부터 조성한 비자금이 총수 일가의 생활비로 쓰였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는 없지만 부인할 입장도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밖에도 박 회장이 비자금을 생활비, 세금 및 이자납부 외에 회사 경영과 관련해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한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러나 정치권 로비자금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드러난 게 없다. 또 '박 회장이 본인 과실로 부도가 나서 그룹에 편입되게 된 일경개발의 분식회계 중 일부를 처리키 위해 175억원 상당의 회계분식을 ㈜두산기업에 떠 넘긴 의혹이 있다'는 박 전 회장 측 진정내용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산업개발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1995년부터 2001년까지의 건설공사 매출채권과 이익잉여금 등 2천797억원을 과다상계하는 식으로 분식회계했다고 자진 공시했다. 박 전회장이 주장하는 진정서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비자금 조성 의혹이 일부분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한편 금융권 일각에서는 가족 체제로 그룹을 이끌어 왔던 두산그룹이 내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표출이 되면서 수습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주주 오너 체제인 현 상황에서 사태수습은 힘들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향후 두산그룹 변화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또 다른 금융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기업의 경영 환경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외국인과 일부 은행들의 지분도 무시 못하는 압력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로 두산그룹의 주채권 은행인 우리은행은 이미 두산그룹을 '관찰대상'으로 분류한 상태다. 하지만, 가족들의 계열분리를 통한 그룹 해체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기 때문에 이런 예상 시나리오가 실현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두산그룹은 대부분의 그룹 계열사들이 순환출자로 묶여있는 구조여서, 오너들이 직접 계열분리를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돈 앞에 회사고, 형제고 다 던져버린 두산 오너들의 싸움은 선대가 쌓아올린 그룹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을 뿐 아니라 가뜩이나 재벌기업총수에 대해 불신이 쌓인 국민들에게 또 한번의 실망만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