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시간 30분'짜리 비상계엄

2025-12-04     조석근 기자
조석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둘러싼 소동을 보면서 꼭 1년 전 부산엑스포 유치전이 떠올랐다. 2023년 11월 28일 엑스포 개최지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 한국은 두둥! 29표…. 바로 직전까지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결선투표에서 뒤집는다며 '역전' 가능성을 떠들었다. '결선'은 무슨. 그냥 한국인으로서 괜히 부끄러웠다. 그 해 여름 잼버리는 어땠나. '세계인의 축제'까진 아니고 보이스카우트 어린이, 청소년들의 모임이다. 모닥불 피우고 고기 굽고 같이 사진 찍는 애들 행사를 '역사적'으로 망쳐놓았다. 156개국 3만6000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간척지의 엄청난 습기와 들끓는 모기떼, 물과 화장실 부족에 따른 스트레스로 픽픽 쓰러져나갔다. 급기야 중도 포기. 행정안전부 전산망 마비 사태로 시민들이 주민등록등초본도 못 뗀 적도 있다.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해 며칠을 허비했다. 느닷없는 2000명 의대증원으로 전국 대형병원, 비상의료체계가 쑥대밭이 되는가 하면, 한일 관계 정상화가 마치 외교의 지상목표인 듯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는 정말 안전하다며 공익광고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지정 추도식 사태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민망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이런 뒤통수를 맞는다는 게 현대 외교에서 가능한가. 그래서 묻게 된다. 도대체 이 정부는 할 줄 아는 게 뭔가. 윤석열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부산엑스포처럼, 한일 관계 정상화처럼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었나.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한동훈 대표를 잡아넣고 개헌으로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애면, 나아가 직접선거를 폐지하면, 신나는 장기집권의 길이 열리나. 비상계엄 선포 150분 만에 상황은 끝났다. 좀 긴 영화 한 편을 볼 시간이다. 국회가 계엄군의 진입을 막으며 침착하게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민의로 선출된 국회가, 그 주인인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을 지켰다. 다음날 아침 이전처럼 만원 지하철로 출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할 수 있게 했다. 다시 정든 사람들을 만나 술 한 잔 마시며 세상을 향한 불만도, 희망도 말할 수 있게 했다. 계엄군이 한 일이라곤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깬 게 전부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하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께 호소한다"고 무게를 잡았다.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대책 예비비 1조원, 아이돌봄 지원수당 384억원, 청년 일자리 및 심해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원을 삭감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민주당의 입법 독재가 예산 탄핵까지 서슴지 않는다"며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를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정무수석을 보내서 협상이라도 잘 해 보든가. 윤 대통령은 본인과 부인의 명태균을 통한 국민의힘 공천개입과 여론조사 조작,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선 한마디 말이 없다. 일관된 무능만큼이나 남 탓 역시 아주 일관되다. 비상계엄 직후 원화가치 폭락으로 환율은 1430원까지 치솟았다. 다음날 주식시장은 마이너스로 출발했다. 한국의 대외신용도는 어떻게 될까. 대통령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은 그 대답을 내놓기도 전에 죄다 사임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