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옥석 가리기 가속페달…대대적 물갈이 확산 우려
대기업 60% 이상, 내년 경영 기조 ‘긴축’ 조직쇄신·사업매각·희망퇴직 이어질 전망
매일일보 = 강소슬 기자 | 끝없는 내수 부진으로 국내 산업 전반에서 긴축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1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30인 이상 기업 239개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 중 49.7%는 내년 경영 기조를 ‘긴축 경영’으로 정했다고 답했다. 특히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내년 ‘긴축 경영’을 하겠다고 밝힌 비율은 61.0%로, 2016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긴축 경영의 방안으로 원가절감, 인력 운영 합리화, 투자 축소 등을 꼽은 만큼 올해부터 본격화한 기업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긴축 경영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건비 감축인만큼 4대 그룹을 중심으로 유통업계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희망퇴직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상위 20개 그룹 중 SK LG 포스코 롯데 한화 신세계 카카오 등 8개 그룹의 14개 계열사가 올해 하반기 들어 희망퇴직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세계면세점(신세계디에프), KT, LG디스플레이, LG헬로비전, 롯데호텔앤리조트,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 G마켓, SK온, 롯데면세점, SSG닷컴, 포스코, 카카오게임즈 등이다.
삼성전자는 호주와 남미, 싱가포르 등에 있는 자회사의 영업·마케팅 직원 15%와 행정 직원 30%가량을 감축할 방침으로, 이미 인도와 남미 일부 법인에서는 감원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SK렌터카 등 비주력 사업을 매각한 SK그룹은 SK텔레콤의 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했으며, SK온도 2021년 10월 출범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이전 입사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LG그룹은 지난 6월 LG디스플레이의 생산직 희망퇴직에 이어 사무직 희망퇴직도 단행했으며, LG그룹 계열사 LG헬로비전도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진행한다. KT도 현장직 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해 전체 인력의 6분의 1에 달하는 2800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유통업계에서도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롯데그룹의 롯데온은 지난 6개월에 이어 13일 6개월만에 2차 희망퇴직 신청서를 받는다고 밝혔다. 10월에는 세븐일레븐이 1988년 법인 설립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며, 지난달에는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롯데호텔앤리조트까지 호텔과 리조트 통합에 따른 인력 효율화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롯데는 비핵심 사업도 매각 중이다. 지난 6일 롯데렌탈을 홍콩계 사모펀드 기업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1조6000억원에 넘겼다. 당시 롯데는 그룹 내 비핵심 사업을 본격적으로 정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롯데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롯데백화점 매출 하위 점포 일부도 매각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그룹도 올해 이마트에서만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이마트는 지난 3월 창사 이래 첫 번째 희망퇴직을 진행한 것에 이어, 지난 6일부터 두 번째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연이은 희망퇴직 단행은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게 이마트 측 설명이다.
신세계그룹 자회사들의 희망퇴직 접수도 줄줄이 진행됐다. 7월 SSG닷컴에 이어 9월에는 G마켓의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며,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도 오는 2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신세계디에프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은 2015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통상 희망퇴직은 40대 이상 중장년층 직원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지만, 신세계면세점은 근속 5년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접수를 받고 있다.
과거 희망퇴직은 근로자 동의를 얻어 정리 해고와 달리 내부 반발이 적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 퇴직자에게 많게는 수억원을 지급해야 하므로 금융권과 대기업과 같은 자금 여력이 충분한 기업이 택하는 인력 감축 방법으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엔 내수 침체 장기화에 경영 실적이 부진해지자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결단하는 식으로 이전과 희망퇴직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연말연시 내수와 소비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내년도는 국내 산업계가 올해보다 더 힘든 경영환경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국내 기업들은 쇄신과 매각, 퇴직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