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앙선관위의 분노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보도자료 제목은 이렇다. <중앙선관위,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 강력 규탄!> 정부 부처, 공공기관의 발표자료에 느낌표(!)가 들어가는 건 결코 흔하지 않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속이 뒤집어졌다. 그 분노가 제목에도 그대로 느껴진다. 선관위는 왜 그랬을까.
바로 이날 '내란 수괴'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는 문제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 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다"는 것인데 그 핵심이 중앙선관위를 통한 부정선거 의혹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의 지난해 선관위 시스템 점검 결과를 언급하며 "얼마든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저는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 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일 계엄군 300여명이 과천 선관위 청사에 도착하자마자 선관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청사를 점거, 전산실을 무단 촬영했다.
도대체 이게 '점검'의 통상적 의미와 맞는지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은 본인이 지시한 것이라고 자백을 한 셈이다. 여기에 대한 선관위의 답변은 이렇다. 실제 부정선거가 가능하려면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 시스템 관련 정보를 해커에게 제공하고, 위원회 보안관제 시스템을 불능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작한 값에 맞춰 실물 투표지를 바꿔치기 해야 하는데, 과연 이게 가능하기나 하냐고 묻는, 선관위의 답답함이 보도자료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선관위는 덧붙인다. 수차례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모두 근거가 없다는 항변이다.
실제로 그렇다. 부정선거론은 2020년 4월 총선 이후 보수우익 유튜버들의 단골 메뉴였다. 당시 일부 낙선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들의 선거무효 소송은 2년 가까운 심리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기각 당했다. 올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선관위 관계자들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고발된 사건에 대해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랑하는 그 검찰이다.
지난 3일 계엄군의 국회 침탈 시도에 비해 어느 정도 가려졌지만 중앙선관위 침탈 역시 대단히 심각한 사건이다. 헌법기관의 정의는 '대한민국 헌법이 설치 근거를 명시한 기관'이다. 국회, 대통령, 국무총리 및 행정 각부, 감사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 등이다. 흔히 등장하는 상식 문제로 이런 것도 있다. 대한민국 5부 요인은 누구인가. 국회의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재소장, 그 다음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다.
헌법 66조 1항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고 규정한다. 그 다음 2항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회에 이어 중요한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를 침탈했다. 아마도 헌법재판소가 파면 여부 결정에서, 아주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