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빛을 잃은 이들을 잊지 말기를 바라며『별들의 위로』
대중문화 이끈 인물 시와 산문으로 기록
매일일보 = 오시내 기자 | 장재선 시인이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상실감, 우울증, 치욕감에도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음을 담아 시집 『별들의 위로』를 출간했다.
시인은 힘들 때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가상의 세계, 즉 영화와 드라마로부터 힘을 얻었다. 대중의 정서에 소구하는 가요에게서도 위로를 받았다. 그 영화와 드라마, 가요의 주인공인 대중문화 스타들의 빛. 그것에 빚졌다는 것이 장재선의 고백이다.
시인인 그는 그 위로의 빛을 시(詩)에 담기 시작했다. 빚진 것을 갚고자 하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언론사에 오래 재직하며 대중문화계를 취재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지난 2017년에 나온 책 『시로 만난 별들』이다. 황정순, 최은희 배우부터 걸그룹 소녀시대까지 자신이 만났던 스타들의 이야기를 시와 산문에 수록했다. 대중문화와 순수문학을 결합한 형태의 새로운 책이라 독자의 반향이 컸다.
이 책 『별들의 위로』는 『시로 만난 별들』의 후속편 격이지만,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산문 비중이 높은 전작과 달리 시문에 중점을 뒀다. 시작 메모 형태의 산문은 시 작품을 이해하는 데 거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저자는 “시문을 중시 여기는 한국인의 문화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유를 댔다. 그는 “서울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 시를 게재하고 있을 정도로 시문을 사랑하는 우리 한국인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장재선은 이번 책 여는 글에 “짧은 시문을 읽으며 길게 미소를 지었으면 한다. 그 웃음이 모여서 우리 모듬살이를 조금이나마 환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광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어질머리를 느끼는 분들이 잠시 숨을 고르셨으면 한다.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를 시로 호흡하며 모쪼록 즐겁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이번 책은 고 송해(1927-2022) 선생부터 차은우(1997- ) 배우까지 생년 순으로 수록했다. 37명의 인물을 4부로 나눠 수록함으로써 각 부마다 한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알 수 있게 했다.
1부는 송해, 남궁원, 박근형, 김혜자, 박정자, 윤정희, 박인환, 윤여정, 김민기, 고두심 등 한국대중문화사의 큰 별들을 대상으로 한다. 맨 처음에 나오는 송해는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3년간 진행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를 다룬 시 「노래하는 마음 곁에서」는 세상에 밝은 기운을 전하고 싶어 했던 방송인의 삶 이면에 있는 아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책의 2부는 가수 겸 배우이자 방송 진행자이며 화가이기도 한 김창완이 첫머리를 장식한다. 윤석화, 이미숙, 최수종, 박찬욱, 강수연, 김혜수, 이정재, 전도연 등의 이름이 그 뒤를 이어 함께 자리한다. 1950~1970년대에 출생한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서양의 대중문화와 한국의 수준을 견주며 그걸 높이는 데 기여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들이 쌓아 온 바탕 위에서 우리 대중문화가 외부 세계와 가까워졌다. 이들의 기여는 대부분 현재 진행형이지만, 고 강수연 배우처럼 이별의 아우라로 그걸 되새기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3부는 그룹 god, 박해일, 박진희, 탕웨이, 한혜진, 전미도, 윤시윤, 한효주 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출생인 이들은 대중문화 인물로서 개인의 성공에 힘쓰는 한편 더불어 사는 가치를 존중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퍼트린다. 탕웨이처럼 중국 국적이면서도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계에 스민 인물도 마찬가지이다. 3부의 맨 마지막 인물인 한효주를 다룬 시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자신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세계로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뚜렷하다.
4부는 그 이름들(권유리, 임윤아, 서현, 임지연, 이세영, 수지, RM, 문가영, 차은우)에서 보듯 현재 크게 주목받는 이들이다. 1990년대생인 이들이 일구는 밭이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일 것이다.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며 활동하는 이들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길 바라는 마음을 각 시편에 담았다. 또한 그들이 세상의 한 켠에 존재하는 그늘을 잊지 말아 주기를 바랐다.
책의 순서대로 각 시편을 읽으면, 한국 현대 대중문화사 흐름을 헤아릴 수도 있을 듯싶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이 익숙하게 아는 인물이 나오는 부분부터 읽어도 좋겠다. 저자는 앞으로도 이 작업을 할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스타가 시의 공간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통해 개인의 성공 욕망과 공동체 정신이 어떻게 만나는지 살피는 일은 매혹적이다.
부록으로 영문 번역 시를 담았다. 영문학자인 김구슬 교수가 옮긴 것들이다. 시인이기도 한 김 교수의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자막을 번역했던 달시 파켓이 감수했다.이번엔 5편만 선보이지만, 향후 더 많은 작품을 외국어로 옮기고 싶다는 게 저자의 소망이다. 한국 대중문화 인물에 대해 운문으로 읊은 것을 외국인들도 함께 즐기기를 바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