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끝없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기 논란… ‘사회적 합의’ 必
교육부 홍보에도 교육현장 반응 시큰둥 졸속도입 우려 커… "지금은 때 아냐"
매일일보 = 김승현 기자 | 오는 2025년도로 예정된 AI디지털교과서 도입 시기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온 가운데 탄핵정국을 맞아 정책 추진동력이 상실되면서 더욱 철저한 검증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7일 AI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분류한 개정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오는 2025년 3월 학교에 도입 예정인 AI교과서의 교과서 지위 확보에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다.
그동안 여당(국민의힘) 측은 교육부가 내년부터 AI교과서를 도입하는 만큼 정책 지속성과 안전성 보장 측면에서 교과서 인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더불어민주당) 측은 AI교과서가 학생 문해력 저하를 유발하고 배포에도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며 이를 반대했다.
현재 교육부는 탄핵정국 가운데서도 원안대로 추진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에 참석했다. AI 디지털교과서 수업을 시연한 뒤 이를 참관한 교사와 학부모에 학생 성장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홍보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격차 해소와 교육약자 보호를 위해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 형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입 속도가 빠르다는 우려에 대해선 교육감과 협의해 내년 계획대로 하되 오는 2026년부터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국어 과목엔 도입하지 않고 사회나 과학은 속도를 조절해 일정보다 1년 미뤄 도입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러한 노력에도 교육현장과 학부모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김희성 서울교사노조 부대변인은 “AI교과서가 실제 현장에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 수렴이나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성급하게 도입하려 한다는 게 많은 선생님들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대변인은 “아무리 컴퓨터를 잘 다루더라도 AI교과서로 수업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덧붙였다.
교육청별 투입 예산이 달라 지역별 교육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학생에 대한 AI 디지털교과서 관련 기기 보급률을 살펴보면 △경남 △대전 △경기 등 5개 시도를 제외한 12개 시도는 보급률 100%에 미치지 못했다. 세종과 제주는 각각 57.8과 63.3%에 그쳤고 서울은 50.8%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입학 자녀를 둔 중랑구 거주 40대 학부모 A씨는 “아무리 디지털기기 보급이 확대됐다곤 하나 교과서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무엇보다 AI교과서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A씨는 “아이들이 해당 기기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할지도 모르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제도를 왜 도입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단 주장도 제기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관계자는 “AI교과서 도입은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와 더불어 교육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수많은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 발달과 성장 및 교육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교육 효과 검증도 없는 AI교과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과학기술로 새로운 교육의 길을 찾는 건 필요한 변화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수는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과정은 과학기술로 새로운 교육의 길을 찾는 과정”이라며 “다만 현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 창의성 계발에 한계를 지닌 단순 전자문제집”이라고 설명했다.
교사협회 관계자는 “교육의 디지털 전환이란 방향성 자체에 이견은 없지만,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학습은 정보 노출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많은 기억이 휘발성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아직은 서책형 교과서를 통한 복습으로 뇌의 정보 처리 속도를 지연하는 과정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