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나와도 ‘미달’, 외국대 나와서 ‘오버’?
[취업시장 ‘천태만상’] 불안한 취업준비생들 “스펙관리 어찌 하오리까?”
[매일일보=윤희은 기자] <매일일보>은 지난 주 특집기사 ‘삼성전자 임원들, 어느 대학 나왔나?’에서 삼성전자 내 외국대학 출신 임원의 비중이 2009년 기준 24.47%(756명중 185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2006년 <한겨레>가 조사해 보도했던 19.14%보다 약 5% 가량 상승한 수치로, 해가 거듭할 때마다 삼성전자 내 외국대학의 입지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외국대학 출신들의 국내 기업 내 ‘연줄’도 그만큼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적 경제공황 사태로 인해 외국에 있던 유학생들이 국내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대거 늘면서 국내 취업준비생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러한 취업준비생들의 불안에 대해 취업포털 사이트 ‘커리어’의 한 관계자는 12일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해외대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고 일축했다.
“해외 마케팅부 등의 특수한 부서에서 해외대학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으로 해외대학교라고 해서 더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편견을 갖지는 않는다”는 것이 커리어 관계자의 주장이었다.
과연 그의 말은 사실일까. <매일일보>은 최근 국내 대기업 취직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의 사례를 통해 ‘스펙’이 대기업 취업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실태 확인에 나섰다.
사례1. 국내 명문대 나왔는데 ‘미달’ 스펙
국내 모 명문대학교 J씨(24)는 3.9점의 학점에 985점의 토익, 1년간의 캐나다 교환학생 경험과 유명공모전 수상경력 1번, 외국어도우미 1년, 자격증 3개의 ‘스펙’을 갖고 있다.
본인의 스펙에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했던 J씨는 최근 대기업 S물산 최종면접에 참여했다가 자기소개 과정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최종면접에 올라온 8명 중 3명이 외국대학이었던 것이다.
면접에는 영어면접도 포함되어 있는데, 외국대학 학생들의 유창한 발음과 어휘력에 일단 기가 죽고 말았다. 교환학생을 1년이나 다녀와서 영어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십년이 넘게 살다온 ‘토종 유학생’들의 실력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종면접 과정에서 일본의 W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지원자는 미국에서만 12년을 살았고 일본에서도 5년가량을 살았다고 했다. 덕분에 일본어, 영어는 현지인과 비등한 수준이었으나 오히려 한국어는 매우 어눌해 의사전달에 있어 버거워 보일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관이 그 지원자에게 매우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놀라웠다.
또 다른 지원자는 미국의 명문 B대학교 출신으로, 면접에서 매우 당돌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J씨는 왠지 그런 모습이 유학생 특유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 같아 절로 기가 죽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J씨에게 S사의 인사 관계자는 “이번 신입사원 전형에서 서류상으로는 최고의 스펙들이 많이 모였다”고 귀띔했다. J씨는 착잡한 기분으로 S사를 나왔고, 며칠 뒤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J씨는 이후 유학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가 가장 불만을 갖는 부분은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로 유학까지 갔다가 왜 다시 한국에 취직하기 위해 오느냐” 하는 것이다. J씨는 “10대 때 해외로 유학 가는 학생들 중에는 도피유학 성격이 상당수이고, 수능보다 외국대학 입학이 쉽다고 알고 있다”며 “부모를 잘 만나서 도피유학 간 학생들이 정작 외국에서 국내 명문대보다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그 스펙을 ‘무기’ 삼아서 한국에 취직하러 오는 것을 보면 허탈하다”고 말했다.
J씨는 또한 “유학생들과 같이 면접을 보면 이미 영어면접에서 불리하다”며, “아무리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도 해외에서 ‘살다 온’ 유학생들을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J씨는 “개인적으로 나의 학벌과 스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최종면접에서 명문대 유학생들과 여러 번 맞부딪히면서 자신감이 많이 사라졌다”며, “앞으로 몇 개의 대기업 전형이 더 남아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례2. 삼수 끝 도피유학…‘고스펙’ 금의환향?
국내 명문대보다 좋은 외국대학에 입학하는 게 수능보다도 쉽다는 J씨의 말은 사실일까. <매일일보>이 몇 가지 사례를 더 조사해본 결과, 대기업 입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H씨(25)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국내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마땅한 대학교에 가지 못해 재수까지 했을 정도로 대학진학에 있어 많은 애로사항을 겪고 있었다. 이후 수능을 한 번 더 쳤음에도 원하는 대학교를 가지 못하자 그는 미국의 한 대학으로 도피유학을 결정했다.
세계 10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이름 있는 학교지만 H씨는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었다. 외국인에 대한 특별전형이 있어 국내 학원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만 잘 이수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H씨는 국내에서 재수를 하면서 우러러 보기만 했던 친구들보다도 ‘고스펙’을 얻은 채 귀국할 수 있었다. 더욱이 H씨는 특별한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쉽게 원하는 기업에 붙었다고 한다.
사례3. 해외 명문대 나와서 ‘오버’ 스펙
물론 해외명문대를 나왔다고 해서 취업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세계 순위 20위권 안에 드는 M대학교의 졸업생 S씨(24)의 사례가 그렇다.
S씨는 국내 광고회사, 신문사, 디자인회사의 단기 인턴 경력이 있을 뿐, 자격증 및 공인영어인증점수는 전무하다. S씨는 유학생활을 일정기간 하면 외국어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그 실력이 인정된다고 해서 굳이 토익이나 토플을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최근 S씨는 평소부터 입사하고 싶었던 B 화장품회사의 인턴에 지원해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S씨의 ‘너무 높은 스펙’이 문제였다.
B사의 인사담당자는 S씨의 이력서를 보면서 “우리는 조건이 눈에 띄게 좋은 지원자는 가능하면 뽑지 않으려 했다”며, “인턴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한 인턴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사담당자는 “단지 S씨가 자기소개서를 너무 열심히 썼기 때문에 그 성의를 높게 사 최종면접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고, 인사담당자의 알쏭달쏭한 말은 면접 초반부터 S씨에게 의구심을 남기면서, 이후 그것은 불쾌감으로 바뀌었다.
인사담당자는 “외국의 유명 대학을 나왔으면 더 좋은 기업을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데”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굳이 우리 회사에 지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묻는 등 연신 S씨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시 인터뷰를 회상하며 S씨는 “더 좋은 자리를 알아보는 게 낫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자주 해서 지원자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며 “한편으로는 나에게 유학생이라 힘든 일은 못할 거라 규정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했다”고 말했다.
S씨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화장품회사였기에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 인턴으로 지원한 것인데, 인사담당자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앞으로는 아무리 가고 싶은 회사라도 작은 규모의 채용에는 지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B사 이외에 또 다른 기업에 지원한 적이 있냐고 묻자 S씨는 ‘있다’고 답하면서 “정말 마음에 드는 광고회사가 있어서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월급이 100만원이었다. ‘내가 들인 돈이 얼마고 배워온 게 얼만데 스펙 낭비하면서 낮은 곳에 가야하나’라는 생각과 일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외국 대학에서 졸업했다고 하면 자연히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회적인식이 있어 힘들다”면서 “비싼 돈 들여서 유학 생활한 다음에 국내에 들어와 고작 작은 기업에 가냐는 주변의 시선이 많다. 나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지원하는 것인데 외적인 시선 때문에 부담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근 들어 부쩍 국내 대기업에 외국대학 졸업자가 몰리는 현상에 대해 “경제가 어렵다보니 미국 회사에서는 유학생을 안 받는 경우가 많다”며, “F-1비자(학생비자)로 거주하는 유학생을 입사시키면 그 과정에서 부대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씨는 마지막으로 “B사에서 탈락한 후 충격이 너무 커 앞으로는 무조건 규모가 큰 대기업 채용만 노려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며, “지금도 몇 군데 대기업에서 전형을 치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