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신규사업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대百, 군살빼기 집중한 채 본격적인 '숨고르기'
2006-11-04 권민경 기자
<정 부회장 추진 유통 신사업 성공여부 경영역량 잣대 될 듯>
평소 조용하고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정지선(33)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여간해서는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드물다. 사업 역시 조용하게 하려는 걸까, 잠잠해도 너무 잠잠하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5월 농협유통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신규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2년 여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끝내고 드디어 기지개를 편 것이어서 업계의 관심은 더욱 컸다. 더욱이 농협과의 제휴로 현대백화점이 뒤늦게 할인점사업에 진출한다는 얘기가 나돌며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이 올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현대백화점 신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사업의 성격상 단시일 내에 성과를 거두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뭐하나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파트너인 농협유통 역시 시큰둥한 반응이어서 현대백화점은 더욱 애가 탄다. 지난 2003년 1월 그룹 총괄 부회장에 오른 후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 부회장에게 이번 신사업 성공여부는 역량 평가의 잣대가 될 것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아 보인다. 현대백화점은 그간 군살빼기에만 집중한 채 신규사업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극심한 내수 침체로 인해 2003년부터 진행된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직원 수를 20%가량 줄였고 간부직 사원의 희망퇴직과 신규채용 중단 등을 통해 몸집을 줄여왔다. 부실 점포도 매각해, 올 1월에는 반포 아울렛을 310억원에 팔았고, 울산 소재 아울렛 ‘메이’ 역시 스타시티에 125억원에 매각했다. 또 영업이 부진했던 부천점을 폐쇄하고 인근에 대형 점포인 중동점을 새로 오픈, 매출과 이익을 대폭 늘리기도 했다. 이를 통해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전년 대비 17%가량 늘어난 영업익 2700억원으로 수익성 제고에 성공했다.올해부터는 1971년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대규모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뽑지 않았던 신입사원도 최근 73명을 채용했다. 올 여름부터는 매장을 제외한 본사 지원부서 임직원들이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캐주얼 차림으로 변하는 등 숨고르기를 끝내고 본격적 신규사업에 나섰다. 이런 고강도 구조조정을 마치고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신규사업 나섰다. 그 포문의 시작은 지난 3월 관악유선방송 인수다. 2002년 서초, 동작, 금호, 부산 케이블방송 등 7개사를 인수했던 현대백화점은 올 3월 관악유선방송, 9월에는 충북 지역 종합유선방송사인 CCS(45%)와 충북방송(100%)까지 인수했다. 이로써 단번에 총 10개 SO 운영업체, 가입자 100만 돌파라는 위상을 얻게 됐다. 케이블 방송은 아직 낮은 수신료로 인해 큰 수익은 없지만 디지털로 전환하면 VOD(맞춤영상정보 서비스)가 본격화되고 주력인 유통부문과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계열사인 현대홈쇼핑에 도움이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미래 성장 산업인 SO분야를 이끌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현대백화점이 심혈을 기울여 오고 있는 사업이 지난 5월 체결한 농협유통과의 전략적 제휴다. 양사는 할인점 ‘하나로. 현대클럽(가칭)을 개발해 농협의 강점인 식품부문과 현대백화점의 강점인 의류, 잡화, 가전제품 등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백화점은 할인점 사업은 이미 포화상태로 접어든 데다 기존 업체들이 구축해 놓은 진입장벽이 워낙 강해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이 같은 방법을 모색했다. 즉 무조건적으로 점포를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매장 수는 적어도 기존 할인점과 차별화된 모델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농협이 가지고 있던 최상급의 식품부문과 현대백화점이 20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바잉파워를 결합해서 기존 할인점과 차별화되는 점포를 만들 것” 이라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해 아산 신도시에 부지를 확보하고 2008년 하나로. 현대클럽 1호점 개점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밖에도 가공식품 신규 브랜드의 공동개발을 통한 농산물 식품가공 사업도 공동으로 추진하는 등 신규사업 분야도 함께 발굴키로 합의했다. 현대백화점이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에서도 농협유통과 공통마케팅, 상품권 제휴 등을 추진해 시너지 효과를 올리겠다고 확신했다. 농협유통 또한 현대백화점과의 업무 제휴는 물론 계열사인 (주)현대푸드시스템(캐터링)에 대한 농산물 판로를 구축하고, 현대홈쇼핑, HCN(종합유선방송회사)을 통한 농협 및 국산 농산물 관련 홍보 등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의 고객800만 명과 농협고객 43만 명을 합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며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지고 파트너인 농협과 ‘우리 서로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보자’ 는 의욕을 다졌다” 고 설명했다.이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성공적 구조조정 후의 사업 확장’이라는 긍정론과 ‘포화된 할인점 시장 진출로 실적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론으로 엇갈려 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 여간 농협과의 제휴로 거둬들인 성과가 별반 보이지 않아 의아하다. 당초 뚜렷했던 사업구상은 갈수록 규모가 작아졌고 업계 또한 관심은 줄고 우려만 늘었다. 농협유통 역시 반응이 시큰둥하다. 농협 관계자는 “지난 5월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구상하고 제휴를 맺었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현재까지도 계속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밝혔다. 또 “현대백화점이 당시 언급했던 하나로. 현대클럽 매장을 어느 지역에 열겠다는 것도 농협쪽에서는 전혀 모르는 얘기였다” 고 덧붙였다. 유통사업 부문은 이제 그룹 2.3세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접어들었다. 업계에서는 유통家 빅3 롯데의 신동빈 부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 그리고 현대의 정지선 부회장의 행보에 벌써부터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때문에 정 부회장의 이번 신사업은 그룹의 중대 활로라는 점에서나, 자신의 역량을 평가한다는 점에서나 중요한 사안이다.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SO사업, 농협유통과의 제휴로 틈새시장 공략 등은 분명 가능성 있는 사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과연 정 부회장이 고착상태에 빠진 신사업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 유통명가로서의 현대백화점의 자존심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보면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