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인하 기자]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총리가 되기 전부터 용산참사 해결을 약속하며 유가족을 위로하던 정운찬 총리는 취임 후 2개월여동안 아무런 대응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라며 발언을 아끼고 있는 것.
그러던 중 지난 10월 28일 법원의 1심판결이 났다. 농성자 모두에게 징역과 집행유예 등의 중형에 내려졌다. 이에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준비 중 이다. 한 계절이 돌아 다시 겨울이 오는 동안 용산 현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매일일보>이 밀착취재해보았다.
사망신고도 못한 유가족들의 제자리걸음
“아직도 이게 해결이 안됐네. 추운데 딱하기도 하지...” 참사현장을 지나가는 행인의 한 마디가 귓전을 때렸다. 현장의 빈소는 쌀쌀한 날씨처럼 휑하다.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은 사고건물 주변에 차려진 천막 안에서 담소를 나눈다. 장소만 특이할 뿐, 갑자기 추워진 날씨 얘기, 군대 간 자식걱정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는 여느 주부들의 대화와 다르지 않다. 참사 발생 후 10개월. 여전히 유가족들은 상복을 입고 있다. 생계를 꾸려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치르지 못한 장례식 때문에 사망신고를 할 수 없어 모자가정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용산 참사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해있는 상태이다. 10월 28일, 서울 지방법원은 '용산 참사' 선고 공판에서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 위원장 등 2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김 모 씨 등 5명에게는 징역 5년, 조 모 씨 등 2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8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고 윤용헌씨의 배우자인 유영숙(50)씨는 판결에 대해 “(사법부를)믿었는데, 진실규명은 대체 어느 곳에서 기대해야 하는 건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그는 사고가 난 뒤 경찰 측이 시신을 수습해 유가족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부검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학살이다. 누구를 위한 법이며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가. 이것은 참사가 아니라 학살로 비춰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유씨는 “남편이 망루에서 떨어졌을 당시 불에 타지 않았다고 생존자 가운데 증언한 사람이 있다. 신분이 확인되는 사람을 왜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놓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검찰 수사의 의혹과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힘쓰지 않는다면 힘겨운 싸움을 계속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유씨는 정치인들에 대한 야속한 마음도 드러냈다. “부산 사격장에서 사고를 당한 일본인들에게는 무릎 꿇고 사죄하면서 왜 10개월 전 사고를 당한 우리에게는 일언반구 말이 없는가. 몇 개월 전 찾아와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한 것은 그저 빈말이었던가 하는 배신감이 든다”고 밝힌 것. 또 그는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정부는 시와 이야기 하라고 하고 해결에 노력하겠다던 총리는 정부가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만 한다”고 억울함을 이야기했다.고인들은 왜 가족을 뒤로 하고 망루에 올랐을까. 유 씨의 곁에 있던 범대위 측 류주형 대변인은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첫번째 이유로 꼽았다. 주택 세입자들은 임대주택입주권과 이주대책비 등을 수령할 수 없었고 상가 세입자들은 권리금과 인테리어를 위한 비용 등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경우 투입될 비용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두번째로는 철거과정에서 빚어졌던 용역업체와의 과도한 마찰떄문이다. 이 부분에서 공권력투입의혹까지 불거졌다. MBC <PD수첩>의 2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용역 직원이 불을 내고 시민들을 폭행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용역 편을 들어주었고 철거민들은 이런 처사에 대해 정당한 저항을 했을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거처 마련이 어려운 겨울철에 내쫓기다시피 실시된 철거가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정치 판사가 내린 판결”, 항소할 것 그렇기에 더욱 용산 참사 관련자들은 이번 판결이 의아할 수 밖에 없다.류 대변인은 "사실상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라는 증거나 증언이 없다. 단지 정황상 증거를 통해 화재원인을 철거민들의 잘못으로 몰아 도시테러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하며 항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MBC <PD수첩>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시너에 의해 불이 날 경우 물을 부으면 화재가 더 확산된다는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무시한 채 물대포를 쏘아서 결국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는 일부 견해가 있다고 한다. 이밖에 사고 전에 용역이 건물에 불을 지르고 그 잔해가 화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불 지른 사람들을 경찰들이 지켜만 보길래 한 시민이 소방관에게 ‘불을 꺼야 한다’고 말했더니 ‘저 사람(용역)들이 추워서 불 쬐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PD수첩>은 보도했다.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선고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치 판사가 내린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는 상당수 경찰관들의 진술이 있는데도 재판부는 이를 배제해 버렸다"며 "20년 후 과거사 관련 재심이 이뤄진다면 무죄로 판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2월 18일 이후로는 용산참사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발표를 하지 않았다.범대위 류 대변인은 한발 더 나아가, 처음부터 순수하게 조사된 사건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수사한 기록 3000쪽을 은닉하고 공개하지 않는 것부터 의혹 투성이라는 것.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제2항을 들어 수사가 진행 중에 있고, 이들이 수사기록을 열람하게 되면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며 수사 종료시까지 열람, 등사를 제한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이것은 경찰특공대 간의 엇갈린 진술 등 불리한 증언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또한 참사 이후, 경찰 측에 불리한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1월 28일, 광주경찰청에서 일선 경찰관들에게 '용산사건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적극 참여 요망: MBC <100분 토론> 시청자 투표'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일제히 발송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또한 2월 3일에는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 참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 살인 사건(일명 강호순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보내 문제가 된 ‘청와대 이메일 홍보지침 파문’이 연달아 일어나 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여기 사람이 있다
이러한 각종 언론의 보도와 진실을 밝히려는 사회 각곳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개월 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고 유가족은 말한다. 물론 유가족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이런 까닭에 나무가 아닌 숲을 볼 것을 범대위 류 대변인은 주장한다. 단순한 사건 자체도 참사이지만 결국 그들이 왜 망루에 쫓기듯이 올라가야 했는지 정부와 사법당국은 헤아려야 하고 그것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열쇠라는 것이다.용산참사현장에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사람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