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 ‘조두순’ 이후 처음으로 아동 성범죄 판단기준 제시
2009-11-24 윤희은 기자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박형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모(65)씨에 대해 7차례의 범행 중 2차례만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는 혼자서 자식을 키우며 생계를 위해 자주 집을 비워야 하는 세입자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만 6∼8세에 불과한 세입자의 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강제 추행했다"며 "피해자인 A양의 뇌리에 평생토록 아픈 상처가 남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에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으로서는 A양의 연령이나 지적 수준 등을 감안해 성인과 달리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하고 단지 일관적으로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A양의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수사 및 심리 원칙을 제시했다.
또 "경찰은 A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만 A양에게서 직접 진술을 들었을 뿐 그 이후는 A양의 교사에게 조사를 위임해 상담일지라는 문건을 통해 A양의 진술내용을 작성해 제출하게 했다"며 "검찰도 A양의 진술과 상담일지 내용을 확인해 의미가 모호한 부분에 대해 검증하는 등을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이러한 수사과정의 문제점으로 A양의 진술에 대한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사람을 벌해서는 안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따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더라도 공소 사실에 대한 범죄 증명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피의자에 대한 증거조사와 양형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해아동의 진술내용과 조사과정 영상물 녹화 및 증거보전 ▲피해아동 조사 전 전문가 의견 청취 ▲조사자와 피해아동 간 신뢰형성 후 아동에 진술 기회 부여 부여 ▲부모 등 조사 동석자의 답변 유도 행위 배제 등의 수사 원칙도 제시했다.
정씨는 2006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7차례에 걸쳐 TV를 보여 준다며 세입자의 딸인 A양을 유인해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뒤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서 2006년 5월과 2008년 3월 범행만이 인정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