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고노 담화 훼손 국제연대로 막아야

2015-06-23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매일일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이를 사과한 고노(河野) 담화가 일본 정부에 의해 사실상 부인됐다. 이에 따라 한일관계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 확실시 된다.이는 한미일 동맹의 신뢰도에도 심대한 타격을 줘 균열을 가져올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 이를 모르고 아베 정권이 고노 담화에 심대한 훼손을 가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무엇을 얻기 위해 이러한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지난 20여년간 한일 관계의 신뢰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노 담화를 사실상 폐기한 것일까. 여기에는 일본 극우세력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현재의 동북아 질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를 다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비롯됐다. 1951년 체결된 이 조약은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것으로 48개국이 참여했다.러일전쟁 이전으로 영토를 되돌린 것도, 일본이 평화헌법을 통해 군대를 보유하지 않도록 한 것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산물이다.다시는 세계평화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고, 일본은 이를 수용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동북아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어왔다.이를 토대로 일본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 중국이 부상하지 전까지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그러나 최근 동북아에서 중국이 급부상하고, 한국도 고도성장으로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일본의 태도가 점차 극우라는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 이면에는 이러한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무력화 내지 무의미화 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산재해 있다.최근 십수년간의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극우 성향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부쇼샤 출판사를 통해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기술한 역사교과서를 발행하자 이를 각 학교에서 채택하도록 극우세력이 나섰다.일본정부 또한 이에 편승해 이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갖가지 압력을 행사했고, 지자체의 독도 관련 행사에 정부관리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위안부 문제 역시 이같은 움직임의 연장선으로 보인다.극우세력이 군 위안부는 전시에 모든 국가에서 운영했다면서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하자 일본정부가 이에 호응한 것이 이번 고노 담화의 사실상 부정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일본 극우세력이 향후 일본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지에 대한 단초를 읽을 수 있다.평화헌법을 바꿔 군사대국을 이루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해석개헌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고, 그동안 금기시 해오던 무기수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결국 일본의 극우세력은 과거 100여년 전의 옛 영광을 재연하겠다는 발톱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동북아의 긴장 고조는 물론 전 세계적인 군비경쟁도 부추길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엄청나다.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군 위안부 강제연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중국,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도 피해 당사국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던 네덜란드도 10대 소녀가 군 위안부로 강제연행 되는 피해를 입었다.이렇듯 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현안을 뛰어넘는 사건이다. 당시 동아시아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던 많은 나라들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를 단순히 한일간의 문제로만 축소시키려는 의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인류 보편의 문제를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희석시키려는 일본 극우세력의 의도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민사회가 보다 적극 나서 인류 보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다.우리 모두 19세기말과 20세기초 동북아에서 발생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