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 다시 세월호를 말한다 (1)

‘참사’가 덮어버린 국가정보원 ‘국기문란 사태’ 짚어보기

2015-06-29     이승구 기자
[매일일보 이승구 기자]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로부터 어느덧 75일째가 지나고 있다. 참사 초기 ‘잊지 않겠다’던 다짐은 6·4지방선거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로 대변되는 ‘인사참사’의 충격 그리고 전례 없이 시들하기는 했지만 월드컵의 함성 속에서 벌써부터 조금씩 그 빛을 바래가고 있는 듯하다.매일일보는 ‘다시 세월호를 말한다’는 시리즈 기획을 통해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적폐를 다시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회를 가져보려고 한다.첫 번째로 꺼내든 화두는 국가정보원이다.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의 깊고 오래된 병폐를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되지만 반대로 직전까지 최대 화두였던 국가정보원에 의한 복합적 국기문란 사태를 묻어버리는 효과도 함께 낳았다. 국가정보원은 2012년 대선 국면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선거개입을 주도적으로 이끈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여당 대선캠프에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과 요약문을 유출·제공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고, 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15일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의한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3분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던 와중에 바로 이튿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을 놓고 사회 일각에서는 언급하기도 끔찍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대선개입 댓글사건·NLL대화록·간첩조작사건 등 이슈 파묻혀
朴대통령,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임명…개혁논의 무산되나

지난해 2월 25일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여러 건의 굵직한 ‘국기문란 사건’들의 배경에는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가기관이 빠지지 않고 거론돼왔다.

국정원은 현 정부 성립 배경인 18대 대선 기간 중 불법 정치개입 댓글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았을 뿐 아니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댓글 의혹 사건과 국가보훈처가 공무원 안보교육 때 사용한 정치적 내용이 담긴 DVD 제작 등의 문제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여기에 더해 여야가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에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했다는 진위여부를 가지고 논란을 일으킬 당시 남재준 전 원장이 스스로 국정원에서 보관하던 회의록 사본을 공개하는 사상 초유의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세월호 참사 직전에는 탈북 화교 유우성 씨에 대한 간첩 증거조작 사건까지 연루되면서 ‘국가조작원’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고, 결국 수장인 남 전 원장과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하는 상황까지 초래했다.이렇게 국정원이 정치 현안의 핵심에 늘 위치하면서 온 국민의 의심과 지탄을 받고 급기야 일각에서는 국정원 해체 필요성까지 거론되던 와중이었다.그러나 ‘세월호 참사’라는 압도적 국가 대재앙 앞에서 모든 논의는 사라져버렸다.세월호 참사를 통해 현 정부의 사고대책 수습에 대한 무능력이 여실히 드러났고, 해방 이후 해소되지 않고 쌓여온 ‘관피아(관료+마피아)’ 등 수많은 적폐가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국정원의 ‘국기문란 사태’ 정도 쯤은 지엽말단적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그동안 논의됐던 국정원의 내부 개혁 문제와 대선·정치개입, 간첩증거 조작 등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던 수많은 문제들이 세월호 참사 때문에 모두 덮여지는 동시에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마저 완전히 꼬인 셈이다.특히 국정원 문제를 다루어야할 국회의 초점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으로 이동하면서 여야가 맹렬히 충돌했던 국정원 개혁 문제는 은근 슬쩍 파묻혀버렸다.이 같은 상황은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박근혜정부가 국정원의 국기문란 의혹들을 한방에 잠재우기 위해 세월호 참사라는 자작극을 벌인 것 아니냐’는 식의 음모론으로 결합돼 조용히 퍼져나가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여기에 얼마 전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사표를 낸 남 전 원장의 후임 국정원장 후보자로 이병기 전 주일대사를 지명한 것은 이 같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이 후보자가 과거 야당의원 매수나 ‘총풍’, ‘차떼기’ 등 수차례의 정치공작 참여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이 친일사관 논란으로 낙마한 문창극 전 후보자보다 문 전 후보자와 함께 인선이 발표된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가 훨씬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반드시 낙마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야권에는 이 후보자 임명이 강행될 경우, 국정원 개혁 문제는 완전히 물 건너간다는 위기감이 확산돼 있다.18대 대선·정치개입 댓글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작업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모든 적폐를 공개한 상태에서 다시는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안전장치를 만드는 기회가 이병기 후보자 인선 저지에 달려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