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이건희 제발 돌아와” vs “재벌 봐주기 이제 그만”

[이슈진단]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절실…이건희 전 회장, 뜻하지 않은 횡재할까?

2009-11-30     이진영 기자

[이진영 기자] 스포츠계를 시작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재계와 언론계로 퍼져나가면서 확산일로에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 경영권에서 손을 뗀 이건희 전 회장은 올해 8월 삼성 계열사인 SDS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일부 배임 및 조세포탈죄가 확정 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로부터 불과 3개월여 밖에 지나지 않은 그를 두고 김진선 강원도지사를 비롯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등이 잇달아 ‘사면’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잠잠했던 ‘복귀론’도 함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목소리에 맞서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재계와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면’촉구 여론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동계올림픽 유치 절실한 김진선 강원도지사 총대 매고
공동유치위원장 맡은 조양호 손경식 회장 추임새 넣어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희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사면복권을 정부에 건의할 뜻을 밝혔고, 이후 20일에는 강원도의회가 청와대와 법무부에 사면복권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희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사면복권을 정부에 건의할 뜻을 밝혔고, 이후 20일에는 강원도의회가 청와대와 법무부에 사면복권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재벌에 대한 사면조치는 우리 사회 정서에서 민감한 부분인 만큼 김 도지사의 언행은 또 다시 각계 분위기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의 주장은 IOC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삼성 그리고 이 전회장의 리더십과 능력이 매우 절실하고, 잠정 유예된 IOC 위원의 직권을 회복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김 지사는 2010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에 대해 “앞으로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뜻을 밝힌 바 있으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0, 2014동계올림픽 유치를 연이어 실패했고, 현재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또 다시 많은 예산과 공을 들이는 실정이다.

2010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와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IOC내 다양한 인맥과 친분을 구축한 이건희 위원같은 거물급 인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지사의 ‘논리’로, 김 지사로서는 절실한 이유가 ‘이건희 사면론’의 시작을 알렸다.

이와 관련해 스포츠계에서는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본격화될 내년 2월에 국제 스포츠계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유치 활동에 나서 취약한 한국 스포츠 외교 역량을 활성시켜 줄 인물이 이건희 회장밖에 없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공동 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도 최근 “동계 올림픽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를 위해 이 전 회장이 연내 사면받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해 그의 사면론을 더욱 더 힘을 힘을 실어주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건희 전 회장 입장에서는 이대로 침묵을 지키고만 있어도 조만간에 사면이라는 엄청난 횡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재계를 중심으로 조심스레 퍼지고 있다.

‘여론몰이’에 대한 거센 비판

물밑 여기저기서 조심스레 흘러나오던 ‘사면론’은 이제 ‘조심’에서 ‘당연’한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경제개혁연대는 23일 법과 국민을 무시하는 행보를 규탄하며, ‘이건희 사면 여론몰이’를 즉각 포기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제개혁연대는 특히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은퇴와 IOC위원 활동 중지는 이 전 회장 스스로 내린 결정이며, 그 결정을 이끌어낸 것은 검찰의 수사나 법원의 판결이 아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특검 사건 외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 불법 정치자금 제공, 2003년 소위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제공 , 2005년 X파일과 금산법 개정 사건에서 출발한 ‘삼성공화국 ’ 논란의 핵심에서 한국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해온 장본인이라는 것도 문제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전 회장은 번번이 ‘법에 따른 엄정한 처벌’을 피해나가 사법정의를 훼손시킨 장본인이라며 법치주의를 강조해온 이명박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서도 분명한 원칙을 정립하고 집행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 전 회장을 사면한다면 ‘친 재벌’ 대통령을 넘어 ‘친 삼성’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임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한 이들의 죄명이 특별경제가중처벌법 상의 배임과 횡령, 분식회계, 사기대출 등 중대범죄였지만 기업인들의 죄질과 피해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초단기간 사면이 이제는 관행이 됐다며, ‘재벌봐주기식’ 사면권 남용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27일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정부가 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현명하고 올바른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도 24일 논평을 통해 “돈만 많으면 무슨 죄라도 용서해줘야 한다는 것이냐”며, “이 전 회장 사면복권에서 보듯이 삼성 앞에만 서면 머리를 조아리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은 어떠한 이유앞에서도 평등해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최대 이해당사자인 강원도내 여론도 김진선 지사와 똑같지는 않은 분위기이다. 강원도내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강원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4일 이건희 전회장의 사면복권을 탄원한 도의회와 도지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대회의는 이날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면 범죄자도 사면해도 된다고 보는 도의회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이것은 국제적인 망신, 도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말하며 탄원서 철회를 촉구했다.

연대회의 유성철 사무국장은 26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라의 법이 무너지느니, 차라리 평창 올림픽을 안 하는 게 낫다”며 “법이라는 것은 어떠한 이유 앞에서도 평등해야 되고, 원칙적이야 되는 것”이라며 주장했다.

유 국장은 또한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추진중인 알펜시아리조트 조성사업이 6000억의 제정 위기를 맞아 하루 이자만 1억원”이라며, “후원금 사용 내역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점을 규명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국장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감시해야 할 도의회가 이렇게 오기까지 방치하고 동조한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진선 지사가 어떤 경유로 탄원서를 제출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공개적으로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며, 전국적으로 다른 시민단체와 연합하여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사면론’을 부각시킨 김진선 지사의 발언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뜨겁다.

직장인 Y모씨는 “동계올림픽 유치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다운 노력 같지 않아 보인다”며 “동계올림픽을 위한 절실함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단지 동계올림픽을 위해서 사면을 해준다는 것은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못을 박았다.

또 다른 직장인 K모씨는 “이 전회장이 활동해도 연이어 실패했던 올림픽 유치인데, 또 다시 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져버리고 큰 죄를 졌던 사람이 유치를 성공시켰다 해도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건희 사면론과 반대론이 팽팽한 분위기속에서 정부가 어느 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매일일보 자매지=파이낸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