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대한민국 엘리트와 윤리의식
2015-07-13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매일일보] 일반적으로 엘리트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정책의 결정, 조직의 지도, 문화의 창조를 이끄는 소수자를 의미한다. 한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선 지식인으로도 불리는 엘리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근대사를 살펴보면 어느 나라든 시대적 소명의식을 가진 엘리트가 근대화에 막대한 기여를 해왔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민주주의 시대에는 소수의 엘리트 역할만큼 대중의 의사도 중요시 한다. 그럼에도 어느 국가든 엘리트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지난주 장관 청문회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의 엘리트 집단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낱낱이 목도했다. 장관 청문회에서의 발언이라고는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발언이 난무했다. 자신이 왜 장관으로 발탁되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있었다. 칼럼 대필은 제자의 글쓰기 교육을 위해서였다는 말은 듣는 사람의 얼굴까지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자신이 산 집에서 살았는지 여부도 몰라 위증까지 하는 촌극도 벌어졌다.지금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경제도 심상치 않다. 일본의 우경화에 따라 동북아의 질서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실무를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할 장관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장관이라는 자리를 개인의 영달이나 가문의 영광을 위한 것쯤으로 인식하고 청문회에 임했다면 이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넘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과거 전 정권에서 어떤 행위가 청문회 통과에 걸림돌이 됐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과거에는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에 따라 낙마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정치적 타협으로, 또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편승해 어찌 장관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덥석 수락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장관 임명을 위해 청문회를 도입한 것은 성인군자(聖人谦谦君子)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보편적 상식에 비춰 국정을 제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자는 뜻에서 도입한 것이다. 때로는 과도한 개인 신상 털기 현상으로 우려를 낳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고 살기 때문이다.지식의 많고 적음은 인격이나 양심, 양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우리는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새삼 확인했다. 대학을 나와 더 많은 지식을 쌓아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이해관계에 치사할 정도로 매달린다는 사실도 또다시 절감했다. 이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윤리의식의 현주소이기도 하다.매천(梅泉) 황현(黃玹)은 절명시(絶命詩)에서 ‘추등엄권회천고(秋燈掩卷懷千秋恨·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날을 생각하니) 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인간 세상에 글을 아는 사람 노릇 참으로 어렵기만 하구나)’이라고 읊었다. 스스로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고뇌해야 한다. 지식만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제라도 청문회에 나서려면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자등명(自燈明)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