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테러 '흔들리는 기술강국'

외국, ‘감청, 위성추적 동원’ 유출 방지 총력

2005-11-25     김경식 기자

우리나라 기업과 과학자들이 반도체, 휴대폰, 생명공학 등의 첨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한국이 산업 스파이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지난 98년부터 올 7월까지 85건의 산업 스파이를 적발했으며 만약 이들이 기술을 유출시켰다면 피해액이 총 77조원에 달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더욱이 정부 관계자은“첨단 기술 유출은 과거 회사 직원에 의한 단순 기술절취에서 최근에는 외국 정부와 연계하거나 기업형으로 대형화되고 있다”고 지적해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자산인 첨단 기술을 외국으로 유출시키는 것은 또 다른 매국행위” 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산업스파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후 처리보다 예방이 중요하며, 국민들의 인식 개선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조직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이승섭 부장검사)는 삼성전자의 유럽 식 휴대전화 단말기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이 회사 현직 연구원 정모(31)씨와 전직 연구원 채모(29)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유출시키려 시도한 기술은 연구 개발비로만 250억원이 들어간 핵심기술로 경쟁업체에 유출될 경우 8조원이 넘는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한편의 산업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을 저지른 두 사람은 검찰에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범의는 없었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스파이 행위가 엄연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충격을 주었다.

더욱이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서 미래가 보장된 젊은 엘리트들 이어서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지난 7월에는 국내 반도체 업체의 퇴직 연구원 7명이 기술을 유출해 중국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했던 일이 있었다.

이 또한 기술이 유출됐다면 피해 금액만 12조7천 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최첨단 기술은 기업들 간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유출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유출을 대비하기 위해 사내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갈수록 지능화되는 산업스파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정원 조사에 따르면 산업스파이 적발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2003년 6건에서 지난해 26건에 이어 올해 10월까지 벌써 27건에 이른다.

피해 예상액 규모로 따지자면 2003년 13조9천억원원에서 지난해 32조9천억원에 이르고 올해는 7월까지의 집계만 보더라도 19조1천억원(19건)에 달해 연말까지 합산하면 엄청난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분야별로는 첨단 기술이 밀집된 전기전자가 35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보통신이 27건, 정밀기계가 10건, 생명공학과 정밀화학이 각각 5건, 기타 4건 등이었다.

그렇다면 산업스파이들은 어떤 이유로 기술유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2003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적발된 51건 가운데 고액연봉을 받고 경쟁기업으로 전직하기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한 경우가 23건(45%)으로 가장 많았다.

이와 함께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보상에 만족하지 못해 기술유출을 시도한 경우가 8건(15%), 승진을 비롯한 인사 불만 및 회사 내에서 개인 비리와 관련한 사실이 드러나 입지가 좁아지자 한몫 챙기고자 벌인 경우가 각각 4건(8%)으로 조사됐다.

최근 월간조선이 조사한 사례들은 이런 수치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중순 대만의 LCD제조업체 A사는 6세대 TFT-LCD공장을 세우기 위해 고급인력이 필요하자 한국의 거래업체 차모씨를 통해 관련 기술에 정통한 국내 B사의 기술인력을 영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차씨는 고액연봉을 미끼로 B사의 이모과장 등 4명에게 접근, 대만A사에 제조기술을 넘겨달라고 유혹했다.

이들은 관련기술을 디스켓에 담아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적발됐다.  또 지난 96년부터 모 반도체 제품개발본부에 근무하던 김모씨는 해외 경쟁사인 C사에 이직하기로 마음먹고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반도체 관련 핵심 프로그램 30여개를 개인 홈페이지에 옮겨 해외로 유출시키려다 적발됐다.

만약 이것이 유출됐다면 피해규모가 4조원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처럼 갈수록 산업스파이에 의한 피해사례가 급증하는데도 이를 막기 위한 예방과 사후 처벌은 모두 여전히 미약한 상태다.

기술 유출이 이뤄지기 전에 적발됐을 경우엔 대개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실제 기술유출이 이뤄진 지난해 말 하이닉스 사건에서도 징역 1년9월에 그쳤다.

외국의 경우는 이와 달라 위기관리 방법이나 실질적인 보안 기법을 개발해 기술 유출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全美경영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상당수 기업들은 내부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직원들의 컴퓨터를 검열하고 심지어 도청, GPS 위성추적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의 대기업 역시 억대 연봉을 주고 보안책임관리사를 두어 기업의 정보보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영국의 한 회사는 회사 밖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사내전산망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고, 전화 등 통신시설에 대한 감청을 실시하고 있다.

또 비밀로 분류된 내용을 연구할 때는 비밀 취급 전용컴퓨터를 사용, 그 내용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특히 미국은 지난 3월 부시 대통령 주도하에 ‘미 국가방첩전략’을 마련해 첨단기술, 핵심인력에 대한 외국정부 및 기업의 탐지실태에 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전 세계는 자국의 첨단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해당 기업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전방위적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의 대응 또한 변화하고는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7월 특허청과 함께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을 개정, 미수범 처벌, 벌금을 상향 조정하는 등 기술유출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출자에 대한 처벌 강도가 낮아 효과가 적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또 기업뿐만 아니라 국책연구소, 대학 연구소 등에서 기술을 유출한 경우 처벌 근거가 취약하다.

현행 영업비밀 보호법은 해외 유출자를 7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에서 첨단 기술 유출자들이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통상 1년 6개월 이하로 처벌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유출자에 대해 현행법상 최고 형량으로 처벌토록 하는 한편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의 해외 매각시 사전승인 절차를 수립하기로 방침을 강화하고 있다.

또 현행법상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국책연구소 임직원 등의 해외 기술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이 가능토록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을 조기에 제정하는 방안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재계 등 일부에서 기업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M&A 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태여서 법제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산업 스파이 활동이 해가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법이 이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첨단 기술 유출이 단순히 기업의 영업 비밀을 빼돌리는 직원의 부정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매국행위라는 의식을 갖도록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기술유출을 제도만으로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요 업적에 대한 공정한 보상으로 직무 만족도를 높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dream84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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