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사면복권은 ‘삼성은행’ 길 터 주기”
이정희 의원 "사면 주장하는 인사 대부분이 전과자…볼썽사납다"
[파이낸셜투데이=김경탁 기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9일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법의 형평성을 흔들 뿐 아니라 ‘삼성은행’을 만들 수 있는 길을 터 주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복권을 반대한다"며, 최근 거론되고 있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론에 제동을 걸었다.
이정희 의원은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한 배임 및 조세포탈죄가 지난 8월 확정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 움직임이 재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이어,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마저 가세하고 나섰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게 그 이유인데, 배임과 조세포탈이란 중죄를 범한 인물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강력히 주장하는 인사 대부분이 ‘전과자’라는 점도 볼썽 사납다"고 밝혔다. 이 의원에 따르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99년 1161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273억원의 세금을 포탈해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적 있고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에 2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해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은 2,828억원 규모의 분식회계와 285억원의 횡령 및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8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의원은 "반성하고 근신해야 할 사람들이 되려 사면복권을 요구하고 나선다니, 동병상련인가 후안무치인가"라고 반문하고는 "뿐만 아니라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은 삼성그룹이 은행을 소유하는데 제약이 되는 걸림돌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삼성은행’으로 가는 또다른 길을 터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 의원은 "정부와 한나라당은 금산분리 완화를 위해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국민과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날치기로 통과시킨 바 있다"고 지적했다.금산분리를 완화할 경우 은행이 ‘재벌의 검은 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냐는 비판에 대해, 엄격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할 것이므로 그럴 염려는 없다고 정부여당은 주장해 왔다. 영국, 독일 등에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주식 보유가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허용되지만, 대주주 자격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사전 통제하고 있으므로 이런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는 논리였다. 이 의원은 "이런 통제장치가 얼마나 허술한지는 금융당국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을 요청한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에 대한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해 스스로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현행 증권거래법 시행령에서는 대주주 요건에 대해 “최근 5년간 증권거래법 및 시행령, 금융관련법령,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및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하여 벌금형 이상에 상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 전과자 박용성 회장에 면죄부 전례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작년 7월, 2006년 7월 2,838억원 규모의 분식회계와 285억원의 횡령 및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주)두산캐피탈을 비엔지증권중개(주)의 대주주로 승인했다. 사면복권 받았으므로 형사처벌 받은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이정희 의원은 "사면복권을 이유로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단순한 통과의례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꼬집었다.이 의원은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도 IOC 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터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은행 소유를 통제하는 방법의 하나인 대주주적격성 심사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은행법 시행령에서는 사모투자전문회사의 업무집행사원이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하면 은행 주식을 보유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규정을 그대로만 적용하면 1,128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이건희 전 회장은 사모투자펀드를 구성해도 은행을 가질 수 없다.이정희 의원은 "그러나 이번에 이건희 전 회장이 사면복권된다면 금융당국은 두산 박용성 회장의 사례처럼 ‘복권됐으니 조세범으로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며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과시켜 줄지 모를 일"이라며, "‘삼성은행’으로 가는 길을 터 주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워은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은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사법 정의를 훼손할 뿐 아니라, 삼성이 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요건마저 허물어 재벌의 은행 소유와 경제력 집중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중죄를 저지른 ‘경제 사범’인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이 ‘동계 올림픽 유치’를 핑계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을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