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慘으로 우울한 대한민국이 행복해지는 법
2015-08-10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매일일보] 慘으로 우울한 대한민국이 행복해지는 법참(慘)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참사(慘事), 참변(慘變), 참극(慘劇), 참혹(慘酷)….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잔인하고 무자비한 일이 벌어졌을 때 쓰는 말이다. 지금은 자고나면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 세상이 됐다.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잔혹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윤모 일병 구타로 살해 등 군 내부 가혹행위, 남편과 내연남의 시신을 고무통에 보관한 엽기적 사건, 4개월짜리 친딸 폭행해 두개골 골절상 입힌 친부(親父) 등이 그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이다.이제 이러한 참혹한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이것이 가지고 올 후폭풍이다. 우리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지고, 존중과 배려가 사라진 사회는 아수라장 그 자체일 뿐이다. 그 가능성이 두려운 것이다.분노 조절 기능이 마비된 사회는 결국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자그마한 분노와 폭력은 스스로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주변으로 전이된다. 결국 자그마한 폭력이 일상화되다 보면 보다 더 강력한 광기를 쉽게 받아들이는 집단마비증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성을 파괴하고 만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은 폭력적 광기가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복이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잔혹한 이기심일 뿐이다. 행복이란 혼자만이 독차지해야 얻을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행복이란 서로가 함께 누리는 것이며, 그렇게 될 때 행복은 배가된다.현대사회를 치열한 경쟁사회라고 하지만 경쟁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수밖에 없다. 경쟁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쟁에서 뒤처지면 마치 불행이 지진해일처럼 밀려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나만을, 내 자식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물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욕이 과도한 경쟁을 유발시켜 결국 서로를 적대적 모순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니 완장만 차면 안하무인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어느 사회든 경쟁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배려가 있는 경쟁일 때 상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배려가 없으면 결국 나도 도태의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자존감은 남을 누를 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이웃을 부축해주고 이끌어줄 때 생겨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전통사회는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키워냈다. 이 전통이 사라지면서 이기심이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태도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라며 밝힌 ‘행복해지기 10계명’이 회자된 바 있다. 오는 1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교황이 방한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종교를 떠나 교황의 행복해지기 10계명은 지금까지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식사 때 TV를 끄고 대화하고,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하라는 말은 위기의 대한민국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