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기술금융, 절반은 기존 거래업체에 지원돼

은행들 TCB·IP 대출 지지부진…“등 떠밀려 시늉만”

2014-08-13     배나은 기자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기술금융이 현장에선 기존 거래업체에 지원이 집중돼 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은행들이 ‘보신주의’라는 질타에 못 이겨 기술금융 조직·상품을 만들고 나섰지만, 부실 우려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달부터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가 반영된 대출을 시행, 은행마다 평균 50~60개 기업에 약 250억원씩 빌려줬다.기업 한 곳당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서나 정책자금의 온렌딩을 바탕으로 4억~5억원을 대출하면서 TCB의 평가서를 반영한 것이다.그러나 기술금융의 일환으로 TCB 대출을 받은 기업은 약 절반이 기존에 은행과 거래 관계를 유지해 온 기업이다.179개 중소기업에 TCB 대출을 한 기업은행 관계자는 “상당수 대출이 기존 거래 기업"이라며 "담보가 부족해 기술평가를 바탕으로 추가 대출했다”고 설명했다.익명을 요구한 A 은행은 TCB 대출 기업 46곳 중 19곳(약 41%)이 기존 거래 기업이다. B 은행도 14곳 중 9곳(약 64%)이 기존 거래 기업에 대한 대출이다.정부는 궁극적으로 담보나 보증 없이 TCB가 제공한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현실에선 TCB의 평가서를 대출금리나 대출한도에 반영할 뿐, 여기에만 의존해 대출해주겠다는 은행은 현재로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체 평가 등급보다 TCB가 평가한 등급이 높으면 대출 심사 때 높은 등급을 반영해주는 정도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TCB 기반 대출이 도입되자마자 한계를 드러낸 가장 큰 이유로는 은행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 방식이 꼽힌다.담보·보증이나 기존의 거래 이력조차 없는 기업에 기술력과 잠재력만 보고 대출하는 게 은행의 본령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TCB 대출보다 먼저 도입된 지식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 담보 대출도 은행들의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일반 시중은행 가운데 IP 담보 대출을 시행하는 은행은 현재까지 한 곳도 없다. 국민, 우리, 신한 등 일부 시중은행이 전담 조직을 꾸려 도입을 검토 중인IP는 부동산처럼 거래 시장이 없어 공정가치가 형성되지 않고, 가치 평가 기관의 주관에 좌우되기 쉽다.대출이 부실해질 경우 담보(IP)를 처분해야 하지만, 거래 시장이 없는 만큼 담보 처분으로 채권을 회수할 방도도 없다.TCB 대출이나 IP 담보 대출이 여태껏 제자리를 잡지 못하게 된 데는 정부가 우격다짐하듯 은행에 기술금융을 요구한 탓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국민 예금을 재원으로 채권 회수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 은행이 자본시장에서 찾아야 할 기술금융(Technology Financing)의 역할을 맡는 게 애초 무리라는 것이다.임형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현금흐름 변동성이 높은 초기 기술기업에 대출하는 유인이 제약된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