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리더십 부재 사회와 교황의 리더십

2015-08-17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매일일보] 지금 우리 사회는 리더십 부재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난국에 처해 있다. 국민은 여당은 물론 야당에게도 국정을 이끌 리더십을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 문제를 명분으로 내걸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정파적 이해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그런 점에서 지난 한 주는 우리에게 이 시대의 리더십이란 과연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한 주였다. 그것은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눈앞에서 보여준 낮은 데로 임하는 리더십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모두를 진심을 다해 끌어안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동 말이다. 그러니 신자가 아니라도 교황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리더십이 믿음을 주기 위해선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장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모습이야말로 교황 리더십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자그마한 요청도 정성을 다해 경청하는 교황의 모습은 바로 그 증좌이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자그마한 감동이라도 불러일으키는 리더십은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 약속 파기를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것은 물론 수적 우위만을 내세워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드는 모습은 이미 일상화됐다. 이렇듯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개혁을 논하고, 혁신을 외치니 누가 감동을 받겠는가. 위선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의 리더십이 냉소만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많은 정치인이 소통의 필요성을 말했다. 소통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견해차가 있음에도 나의 주장만 앞세운다면 그것은 이미 소통이 아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상대 마음을 못 열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라고 갈파했다. 여든 야든 진심으로 소통이 가능한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스스로 먼저 실천해 보라. 권력은 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이 있는 실천이 있을 때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지 않았는가.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이 어려운가. 그렇다면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명량’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순신의 리더십이라도 느껴보라. ‘명량’이 국내 영화사상 12일이라는 최단기간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 16일 역대 최다 관객 기록마저 갈아치운 이유는 누란의 국가적 위기에 병사와 백성을 하나로 묶는 그와 같은 리더십이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끊임없는 갈등에 지쳐가고 있다는 반증이다.최근 들어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인간성을 파괴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으나 정치권은 제대로 된 법률 하나 통과시키지 못했다. 경제도 낙관할 수 없다는 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심상치 않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마치 오불관언(吾不關焉)하겠다는 자세로 보일 정도이다.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떠난다. 우리 가슴에 깊은 감동을 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이 우리 정치인 가슴에도 퍼졌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국민들은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교황의 리더십을 직접 보고 느꼈다.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보고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결국 새로운 결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