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국회 무용론에 응답해야 한다
[매일일보] 법안 처리 기능이 마비된 국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제는 무용론(無用論)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입씨름 하지 말고 진짜 씨름대회 열라”는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의 농담조 발언에 발끈해 정색하고 나섰던 해프닝은 작금의 국회 위상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게 15일로 136일째다. 세월호 관련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여야의 정치력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양당 구도라는 우리의 정치 역학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당의 대립각을 완화시켜줄 중간 세력이 없다는 점에서다. 이러다보니 내가 잘해 득표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의 흠집을 들춰내 반사이익이라도 보자는 심리가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설훈 의원이 대통령 사생활과 관련된 시중 루머를 입에 올린 것은 정부 여당을 흠집 내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심리가 작동된 전형적인 사례다.
여든 야든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도 당선되기를 꿈꾼다. 상대보다 표를 더 받으려면 유권자들로부터 변함없는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을 위한 정책은 물론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입법 활동에 대한 4년간의 성적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사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이즈마케팅에 더 집착한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지지층 집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협상과 타협의 정치는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학자(學者)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학문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지 않는 학자를 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삼권분립체제 하에서 입법권은 오로지 국회만이 갖고 있는 고유권한이다. 그렇기에 입법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입법을 방치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대표로 두고 있다. 법을 만들지 않는 국회의원이 과연 국회의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민생은 아랑곳 않고 정쟁으로 날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세비(歲費)는 꼬박꼬박 받아가고 있다. 국회가 무노동 무임금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에 국민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라 있다. 혈세의 낭비라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와 야를 막론한 것이다. 여야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의 정치를 버리지 않는 한 국민의 마음은 냉정하게 돌아설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안정당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물론 지리멸렬한 야권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력과 결합되어질 경우 이것이 갖는 폭발력은 과거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 전부터 불었던 ‘안철수 현상’이 향후 새로운 형태로 표출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야의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경쟁은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때 그 의미가 있다. 상대를 존중하기는커녕 마치 인정도 하지 않겠다는 듯한 적대적 경쟁은 상대는 물론 자신도 파멸로 이끌고 갈 뿐이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마음이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19대 국회에 처음 등원하면서 의원선서를 했던 그 초심을 잃어버렸다면 다음 총선에서의 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