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실손보험’을 향한 엇갈린 시선
정부 “긍정적” VS 보험사·소비자 “부정적”
출시 앞둔 보험사들 ‘눈치작전’…출시 안 할 수도
[매일일보 강수지 기자] 정부의 방침으로 탄생한 노후실손보험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금융당국과 보험사·소비자단체의 향후 전망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앞으로 괜찮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일부 보험사들과 소비자단체는 “상품 자체가 매력이 없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예견된 실패”라고 평가했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와 동부화재, 현대해상 등 8개 손해보험사가 지난달 1일 출시한 노후실손보험의 가입건수는 이달 기준으로 1500여건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현재 노후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00%를 크게 웃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실손보험은 실제 손실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보험이다. 지난달 1일부터 가입연령이 65세에서 75세로 늘어났으며, 보험료가 기존 상품보다 20~30% 저렴해진 바 있다. 하지만 자기부담금은 늘어났다.
이 같은 노후실손보험의 실적이 부진한 것과 관련, 금융당국은 “향후 고령화되는 걸 대비해 제도적으로 지원한 상품인데 아직은 그 실적이 부진하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을 뿐 향후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실적을 논할 때가 아니다”면서 “여름휴가 시즌 등 추석연휴가 겹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사 관계자는 “일반실손보험과 보장 내용이 다르고 자기부담금도 높은 편”이라면서 “노인들은 보험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적극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은 자기부담금, 공제금액, 상급병실료 차액 등 단어와 보장 내용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손보험은 질병 등에 노출되기 쉬운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보험이다. 하지만 기존의 실손보험료가 과다하고, 노년층은 가입할 수 없는 것에 따라 정부는 노후실손보험 상품을 내놓도록 보험사에 지시했다.
그러나 사업비가 적고, 보험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도 적다보니 보험사와 설계사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판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가입대상인 노인들은 보험료를 지불할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기존에 접근했던 부분이 아니라 겁이 날 수는 있지만 합리적으로 상품을 고안해 나가면 된다”면서 “보험사 입장에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의 실손 가입자는 약 3000만명인데 이들이 늙었을 때는 노후실손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면서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분명 발 빠른 보험사들은 이 상품을 차별화해 언더라이팅, 보험료 측정에 있어 세분화를 꾀하는 등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추이가 계속 역피라미드로 갈 수밖에 없으니 노후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대비해야 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보험은 젊을 때 노년을 위해 가입하는 건데, 특히 60~70대에 의료비가 많이 소요돼 가장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수입이 없어 가입 필요성은 높지만 가입할 상황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연령이 올라갈수록 의료비와 함께 보험료가 오르기 때문에 돈이 없는 노인 고객들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보험사는 판매할 이유가 없고, 고객은 돈이 없다”면서 “정책성 보험은 민영 보험사에 맡기면 안 된다. 위에서 지시하니깐 면피용으로 판매하는 것이라 효과는 예견된 실패다”고 강조했다.
즉, 노후실손보험은 소비자를 위한 상품이 아닌 면피용 상품으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여력이 되는 사람들이 빈틈을 준비하기 위해 가입하면 된다”면서 “국가가 다 메꿔줄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이어 “억지로 위험률을 근거해 보험료를 측정하고 있는데 불합리한 게 있다면 살펴봐야겠다”면서 “과거에 가입했던 고객들의 보험료가 크게 올라가는 것에 대비해 선택권을 확대해 줄 필요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 없앨 수는 없으니 제도적으로 계속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을 유지하기 어려울 경우 여력이 되는 이들은 노후실손보험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상품을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금소원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나서서 강제적으로 젊을 때 비갱신형으로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향후 수입이 없을 때는 쌓아 놨던 것으로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노후실손보험의 경우 10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고 광고되고 있는 것은 ‘사기’”라면서 “100세가 되면 보험금보다 보험료가 비싸진다. 이는 사업비가 플러스되기 때문인데, 당국은 갱신형으로 100세까지 보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일부는 공감한다”며 “단독실손의료보험을 개선하면서 지난해에 15년 이상 동일한 보장을 못 하도록 바꿨다. 100세 보장 광고는 많이 줄어든 걸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노인실손보험에 대한 금융당국과 보험사·소비자단체의 전망과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이 상품을 출시해 판매 중인 보험사들은 홍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홍보를 안 하면 정부라도 나서서 주기적으로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의 방안을 살펴보겠다”면서 “신규로 가입할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개선할 예정이다. 현재 그 방안을 여러 가지로 모색 중이다”고 밝혔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는 FP들의 노후실손보험 판매를 돕기 위해 교육·마케팅 자료를 만들어 영업기관에 배포하고, 사내 교육방송을 하는 등 힘쓰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아직 노후실손보험을 출시하지 않은 보험사들은 현재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노후실손보험의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타사의 실적과 반응 등이 계속 좋지 않을 경우 출시를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