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지배’ 금융지주사, 위기상황에 무방비

KB 회장 직무대행 3주째 ‘반쪽 경영’

2015-09-30     배나은 기자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기형적인 국내 금융지주사 지배구조가 ‘비상시 리더십 부재’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이는 금융지주사 회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회장과 결탁해 빚어진 결과로,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12일 임영록 전 회장이 금융위원회에서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직후 긴급 이사회를 열어 회장 직무대행으로 윤웅원 KB금융 부사장을 선임했다.그런데,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된 후 3주째 접어들고 있음에도 윤 부사장은 회장 직무대행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윤 부사장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이사(등기이사)가 아니어서 대외적으로는 그의 결재가 아무런 법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반쪽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KB금융 측은 부랴부랴 법원에 윤 부사장의 직무대행이 회장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이러한 결과는 지난해 말 임 전 회장이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칠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임 전 회장은 우선 KB금융지주의 사장직을 폐지해버렸다. 본인이 KB금융 사장 출신이지만, 지주 내 2인자 자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어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을 등기이사에서 제외시켜 이사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결국 임 전 회장의 해임이라는 비상상황이 발생했는데 회장을 대신할 등기이사가 아무도 없어, 비등기이사인 윤 부사장이 ‘반쪽 경영’을 해야 하는 금융권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하나금융지주도 KB금융지주가 간 길을 그대로 걸었다.김정태 하나금융 회장도 지난 3월 지주사의 사장직을 없애고,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윤용로 외환은행장을 등기이사에서 제외시켜 버렸다.그 결과 김 행장과 윤 행장은 하나금융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이사회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반쪽 부회장’으로 전락했다.더구나 하나금융지주는 이 같은 중대 사항을 공시도 하지 않고 쉬쉬했다.우리금융도 이순우 회장만 사내이사로 올라있을 뿐 나머지 등기이사는 모두 사외이사여서, 회장 유고 시에는 사외이사인 이사회 의장이 회장직을 승계한다.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하물며 초등학교 학급에서도 반장이 없으면 부반장이 대신하는데 회장 유고시 대신할 등기이사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국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는 위기 상황시 대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정말 기형적인 구조”라고 비판했다.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기형적인 이사회 구조에 대해 회장이 ‘제왕적 권력’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금융지주사 내에서 2인자가 될 수 있는 지주사 사장이나 계열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의 행장을 이사회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그룹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구축하려는 목적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우리보다 금융 경쟁력이 훨씬 앞선 일본은 이와 다르다.금융지주사 회장, 부회장, 사장과 은행장 등의 연봉이 모두 12억~13억원으로 엇비슷할 뿐 아니라 경영에 있어서도 상호 협의와 역할 분담을 중시해 특정인의 권력을 강화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것으로 전해졌다.한 해 순이익이 10조원에 육박하는 글로벌 은행으로 발돋음한 미쓰비시UFJ, 스미토모미쓰이, 미즈호 등 일본 3대 금융그룹 모두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국내 금융지주사의 기형적인 구조는 회장과 사외이사의 결탁 없이는 불가능해 사외이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금융지주사 회장이 정관을 변경해 ‘나홀로 지배’ 체제를 구축하려고 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점에서,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사외이사의 역할은 도대체 어디 갔느냐는 지적이 나온다.재벌닷컴의 정선섭 대표는 “미국,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들은 경영진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완전히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장과 사외이사의 결탁 관계를 끊지 않는 한 금융권 개혁은 요원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