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펀드이동제…금감원 “무조건 밀어붙여!”

[이슈진단-펀드판매사 이동제] “펀드시장 활성화” vs “고객 유치 흙탕싸움”

2009-12-28     이진영 기자

[파이낸셜 투데이=이진영 기자] 투자자들이 새로 구매하는 펀드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펀드 모두 원하는 금융회사로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는 ‘펀드 판매사 이동제’가 오는 1월말 도입될 예정이어서 금융업계 내에선 이에 대한 대비로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에는 투자자가 판매사를 한번 이동하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는 펀드를 환매하고, 또 다시 새 판매사에 판매 수수료를 내야 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추가 수수료 부담 없이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 제도로 인해 펀드 판매사 간의 지속적인 경쟁을 불러일으켜 판매수수료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이를 통해 펀드시장을 보다 더 활성화 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당국이 업체간 고객유치 쟁탈전만 부추기는 꼴”이라는 볼멘 목소리와 함께 금감원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불완전한 제도를 끼워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우려감 높은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금융업계 “금감원의 방침이라니…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일부 판매사 전산시스템 도입조차 안 돼 당분간 유명무실

투자자들이 펀드투자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투자한 금액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끌어 올리고, 보다 많이 자산을 늘리는 것이 유일무이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재테크의 한 수단인 펀드를 통해 자산 불리기에 매진하는 고객 입장에선 적은 퍼센트의 수수료라도 아깝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예전부터 투자자들은 펀드 판매 서비스 품질에 비해서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계속 제기해 왔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펀드 수수료 및 판매 보수 상한선 인하라는 방침을 내놓았고, 금감원 또한 지난 12월 11일 ‘판매 이동제’를 1월25일에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쟁사간의 고객 유치 경쟁으로 자연스럽게 가격인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번 판매 이동제 실시에 따라 펀드와 관련한 회사들은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에는 제도 자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었다.

D증권사 관계자는 22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동제 도입에 대해 업계 주변에서 말들은 많지만 이동제를 통한 수수료 인하를 비롯해 고객들을 위한 펀드 사후서비스가 크게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H증권사 관계자는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금감원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회사 차원에서 이 제도에 대한 생각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순 없지만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볼멘 소리를 냈다.

H증권 관계자는 펀드 이동제가 수수료 인하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도 “선취수수료 하나 없애는 그 자체가 펀드시장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굉장히 과장된 것”이라며, “막상 이동제가 실시되면 펀드를 옮기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고객들은 펀드 매니져의 능력과 신뢰도에 따라 이동하지 싼 수수료 때문에 옮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펀드라는 자체가 주식과는 성격이 달라서 수수료 때문에 이동이 잦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금감원이 이동제를 통해서 펀드 서비스 질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는 “이동제가 실시되면 펀드 판매사마다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고객을 뺏기에 급급한 싸움장터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증권사들, “적극 찬성인건 맞는데 결과는 글쎄…”

22일 각 증권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본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펀드 판매사 이동제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적극 찬성’ 혹은 ‘중립’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22일 각 증권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본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펀드 판매사 이동제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적극 찬성’ 혹은 ‘중립’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펀드 이동제에 대해 중립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또 다른 H증권사의 관계자는 “펀드 투자자들의 기존 거래 유형상, 선취 수수료 가격에 의한 이동은 크게 없을 것”이라며 “더욱이 시행 초기에는 투자자들이 펀드 이동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크게 이동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선취형으로 거치식 투자를 하는 고객들에게는 판매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수료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적립식 펀드 가입자들에게는 다소 영향이 있더라도 그렇게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펀드 이동제를 적극 찬성한다는 D증권사의 관계자도 “회사입장은 적극 찬성이지만 미흡한점이 많은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전산사고나 계좌 도용을 방지코자 금감원에서 판매사 이동시에는 본인확인을 위해 반드시 지점을 직접 내점 해야만 한다는데, 물론 고객의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한건 알지만 직접 방문이 가장 큰 불편함”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금감원은 기존 판매사에서 계좌확인서를 발급 받아 5거래일 안에 옮기고자 하는 판매사를 직접 찾아가 계좌를 개설하고 이동 신청을 하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라고 밝혔지만 문제는 그 절차가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증권사 방문자체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전국에 지점수가 얼마 없는 증권사일 경우에는 방문이 쉽지 않고, 특히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 지점까지 방문해서 판매사를 자주 옮긴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지방에 거주하는 투자자들에겐 ‘그림의 떡(?)’인 제도로 끝나기 쉽다는 것.

금감원은 가장 ‘간단한’ 방식이라 주장했지만 증권사는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는 “이미 키움증권이 49개에 해당되는 펀드에 판매수수료를 제로로 했듯이 수수료 인하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지만, 자칫하면 판매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고 말해 펀드판매사 이동제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수수료 인하 등 고객 위한 서비스 업그레이드 기대 있지만
금감원 제시 ‘간단한’ 방식에 업계 가장 ‘불편한’ 방식 인식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연말까지는 판매사 이동제 도입에 필요한 전산 시스템 정비를 모두 완료해줄 것을 재촉하는 내용을 포함한 공문을 각 펀드 판매사에 보냈다.

“일부 판매사들의 준비가 늦어지더라도 내년 1월말에는 무조건 실행할 것”이라는 금감원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은행 증권 보험과 같은 회사들은 다급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타 고객편의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 및 툴 개발과 펀드 이동제 관련 TF팀을 구성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두르는 금감원 때문에 정신없어

이 제도는 코스콤 시스템과 같은 고객의 계좌정보 등을 보관한 고객원장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므로 판매사간 똑같은 시스템을 사용해야 함에 따라 전산시스템 설치는 필수.

이와 관련해 본지와 인터뷰한 증권사들은 대부분이 전산 시스템 도입을 마쳤거나, 12월 말 혹은 1월 중으로는 테스트까지 거쳐 모두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판매사에서는 지금까지도 전산시스템 도입조차 되지 않은 곳도 있어 금융업계쪽은 제대로 준비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금감원이 무작정 제도부터 도입하려 든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특히 모 은행 관계자는 “이동제를 실시하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전산화 작업을 모두 완료하는 것은 무리”라며, “전산화 작업만 두 달 넘게 걸리는 일이라 다른 중요한 사항은 전혀 검토도 못해본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정부가 올해 시행한다고 했다가 내년으로 미뤄 혼란만 가중시켰다”며, “미흡한 상황인걸 알면서도 왜 재촉하고 있는지는 금감원 직원만 알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산화 작업까지 모든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는 H증권 관계자는 “우리가 전산화 작업을 미리 마쳤다 하더라도 다른 펀드사가 준비가 덜 되었거나 미흡하다면 고객들도 펀드 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판매사들이 모두 준비될 때까지는 한동안은 시행도 못해보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서, “전 판매사마다 전산시스템 설치를 완료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라며 펀드 이동제가 실시됐다고 해서 바로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A펀드사에 있는 투자자가 B펀드사와 C펀드사를 자유자재로 옮기고 싶어도 B와 C펀드사의 전산 시스템이이 모두 갖춰질 때까지 이동할 수 없어 제도도입 후 당분간은 아무 소용도 없는 제도로 전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투자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한 일반 펀드 투자자는 “일부 언론에서 아직은 불완전한 제도라고 보도되고 있어 펀드 이동제를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D증권사 관계자는 “이왕에 시행하기로 결정이 났다면 시행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특히 시행에 앞서서 전산 오류가 나지 않도록 전산상 체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 관계자는 “이동제가 판매수수료 인하에 그칠게 아니라 펀드 사후관리 서비스 등 서비스 적인 측면에서의 향상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올해 들어 펀드가 지속적으로 환매되고 이유는 펀드판매사가 펀드만 팔아놓고 고객들에게 적절한 사후서비스를 못한 부분도 크다는 말을 들었다”며 “펀드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후서비스를 잘하는 금융사를 택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 투데이=매일일보 자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