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얼굴에 점수 매겨주세요”
성형중독으로 정신과 찾는 초등생 급증
최근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의 검색 게시판에는 ‘제 얼굴을 평가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자신의 사진을 올려놓고 보는 이에게 몇 점 정도 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러면 “100점 만점에 한 80점 정도 줄 수 있겠네요” 혹은 “심하게 평범하네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외모입니다” 등의 답변이 이어진다. 간혹 “눈이 너무 작으니 쌍꺼풀을 하는 게 좋겠네요” 등의 성형권유(?)가 뒤따르기도 한다.
이렇게 인터넷 상에 자신의 얼굴을 평가해 달라는 글을 올리는 사람은 대부분 초등학교 4~5학년에서 중학교1~2학년 정도의 10대 청소년층이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10대의 열망과 ‘외모가 곧 경쟁력’이라는 비뚤어진 사회적 풍토가 맞물려 초등학생까지도 성형열풍에 가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심한 경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초등학생 성형중독은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세태가 급기야 초등학생까지 물들여 버렸다. 성형수술에 있어 더 이상 초등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성형외과를 찾는 어린이가 크게 늘었고, 학교주변 문구점에는 어린이용 화장품이 필수품목이 돼버렸다.
이제 초등학생 사이에 ‘외모’에 관한 욕심은 “잘 생기고 예뻤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수준을 넘어 “반드시 예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성형중독’에 빠져 정신과 치료를 받는 어린이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네티즌의 얼굴을 평가해 주기까지 한다.
회원이 자신의 얼굴 사진을 사이트에 게재하면 사이트 방문객들이 평가해 1~10단계의 등급을 매겨주는 것이다. 방문객이 외모를 평가하면, 홈페이지 한편에 사람들의 평균 점수와 투표횟수가 나온다. 점수가 높을수록 외모 호감도가 높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등학생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런 사이트가 성형을 조장하고 외모만을 중요시하는 폐해를 낳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 사는 박모양(13)은 1년 전쯤 또래 친구들이 자주 찾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을 올렸는데, 사진을 본 사람들이 달아놓은 평가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눈이 너무 작고 쳐져서 바보 같아 보인다’는 말에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며 어떻게 하면 눈을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박양은 결국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한번 수술을 하게 된 이후 거울을 볼 때 마다 이번에는 ‘코가 너무 낮아서 이상해’, ‘얼굴에 비해 입이 작아서 답답해 보여’ 등 불만이 쌓여갔고 계속해서 성형수술을 시켜달라고 부모님 속을 태웠다. 아이의 지나친 외모 집착에 급기야 박양의 부모는 지난 8월부터 청소년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수원에 사는 초등학생 윤모양(12) 역시 얼굴평가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거금(?)을 들여 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고 자신의 눈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윤양은 지난 여름 방학을 이용해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었다. 이로 인해 극심한 대인기피증이 생긴 윤양은 결국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께 쌍꺼풀 재수술을 시켜달라며 포기하지 않고 있어 윤양의 부모는 한숨만 쉬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최근에는 초등학생 성형이 꽤 늘고 있는 추세” 라며 “사실 초등학생의 경우 특별히 치료의 목적이 아닌 경우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만류하고 있지만, 본인이 워낙 강하게 수술 의사를 보이기 때문에 부모의 동의를 얻어 시술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이어 “곧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더욱 많은 초등학생들이 성형을 위해 병원을 찾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많은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수술을 해서라도 예뻐지겠다는 초등학생들이 늘어나 걱정스럽다”며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라면서 수술부위가 변형되거나 부작용 증상이 생길 수 있으니 치료가 목적이 아닌 한 수술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형은 물론 개인의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TV를 켜면 하루가 멀다 하고 얼짱, 몸짱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거기에 인터넷에서는 사람의 얼굴에 등급을 매겨가며 평가하는 웃지 못할 사이트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예쁘면 모든 게 다 해결 된다’ 는 식의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채 성숙되지 못한 초등학생들이 수술대 위로, 그리고 정신과를 전전하며 몸도 마음도 멍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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