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 성장판 닫힌다

[특별기획] 위기의 제조업 돌파구는 없나①

2015-10-26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한국의 제조업이 위기다. 그간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됐던 수출이 환율 요인 등과 같은 대외악재를 만나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주요 제조업체들은 잇따라 ‘어닝 쇼크’를 기록하고 있다.

기술개발·혁신 노력 없이 설비투자 올인…경기부진에 치명타

26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에 비해 3.2% 성장하는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2분기 2.7% 이후 5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분기별 성장세 역시 1분기 3.9%, 2분기 3.5%, 3분기 3.2%로 점차 성장률이 둔화되는 추세다.특히 심각한 내수 침체 속 국내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과 제조업 역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충격이 크다.3분기 수출은 액정표시장치(LCD)와 자동차, 화학제품 등을 중심으로 전기 대비 2.6% 감소했다. 2008년 4분기(-4.3%)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수출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도 지난해 3분기(-1.1%) 이후 1년 만이다.수출 대기업들은 3분기 잇따라 ‘어닝 쇼크’를 발표하면서 제조업 성장판이 닫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4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60% 급감했고 영업이익률도 8.7%로 주저앉았다. 하드웨어 위주의 고가 전략이 비슷한 품질의 중국제 값싼 제품에 치인 것이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현대차도 3분기 영업이익으로 1조6487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다. 기아차의 영업이익도 18.6% 감소한 5665억원에 그쳤다. 현대중공업 역시 컨테이너선·벌크선은 중국 조선업계에 추격당하고, 고부가가치의 해양플랜트는 셰일가스 열풍으로 해양 석유 시추가 줄어들어 2분기 적자에 이어 3분기에도 적자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국내 경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데 반해 세계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10월 주요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반등하고 있는 것이 그 일례다.유로존의 10월 제조업 및 서비스업 복합PMI 전월 52.0대비 소폭 상승한 52.2로 나타났다. 중국의 10월 HSBC 제조업PMI도 전월 50.2대비 상승한 50.4로 3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10월 제조업PMI도 전월 51.7에 비해 상승한 52.8로 7개월래 최고치다.

경제 지표의 반등은 실물 경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애플은 지난 분기 영업이익이 111억 달러로, 영업이익률 26.5%를 기록하면서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 회복세 속 국내 경제는 침체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장기화될 것이란 부정적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5년 경제·산업전망 세미나’에서 전자·자동차·철강·조선 등의 업황이 올해보다 부진하고 석유화학·건설업종도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전경련은 부진한 국내 경제 상황에 비해 세계경제는 성장률이 회복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 세계경제는 미국 주도로 올해 예상치인 3.1% 보다 높은 3.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우리 산업계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 유럽 실물경기의 미약한 회복세, 일본 아베노믹스의 불투명한 파급 효과, 중국의 내수성장 약화 등 위협 요인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국내 제조업의 저성장 문제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은 산업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국내 제조업은 혁신적인 기술, 지식재산권 같은 무형자산 대신 땅, 기계 등과 같은 전통적인 유형자산에 의존해 경기 부진에 취약하다는 것이다.제조기업의 매출을 유형자산으로 나눈 ‘유형자산회전율’은 2010년 이후 평균 2.7회로 집계됐다. 전 세계 제조기업 평균 3.3회에 크게 못 미친다.국내 제조기업의 총자산 가운데 유형자산 비중은 35.8%에 달한다. 제조업이 발달한 독일도 19.8%고 미국은 12.8%에 불과하다. 국내 제조기업은 같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유형자산을 사용한다는 의미다.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제조업은 화학, 제철 비중이 높은데 이들은 대규모 생산설비가 필요한 구조”라며 “현금 흐름이 악화돼도 일정한 투자를 계속해야 하니까 경기부진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