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기술금융 독려...문제생기니 금융권 탓

실적 압박으로 원인제공...제2의 모뉴엘 사태 우려도

2015-11-04     배나은 기자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모뉴엘 부실대출 사태가 불거지면서 창조금융을 표방하며 은행권에 기술금융 확대를 요구해 온 금융당국의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일각에서는 정부의 무분별한 대출 압박이 이어질 경우 기술금융 실적 쌓기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이 제2의 모뉴엘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모뉴엘 사태는 근본적으로 국내 수출금융 시스템의 허점과 금융권의 안일함에서 비롯됐다. 특히 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혁신기업’이라는 허울에 속아 현장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서류만 믿고 거액의 대출을 해준 셈이다. 현재 모뉴엘 사태에 따른 금융권 피해액은 약 6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이에 금융당국은 내부 통제 부실에 따른 인재라며 금융권을 질책하고 나섰다.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주례임원회의에서 “모뉴엘 위주장수출 관련 대출 등은 내부통제의 부실 등 금융인으로서 기본에 충실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며 내부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러나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 역시 질타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모뉴엘은 지난해 연 매출에 맞먹는 1조586억원어치의 매출채권을 넘기고 현금을 조달했다. 이는 올 2월에 드러난 KT 자회사 협력업체 3000억원 대출 사기와 거의 유사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감독당국은 사건이 발생해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기술금융에 대한 압박 역시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기술이나 지적재산만 있으면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한 기술금융은 정부가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추진해온 창조금융의 핵심이다.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은행권의 보신주의 타파를 요구했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역시 잇달아 금융권 책임자들을 소집해 대출 활성화를 독려했다. 벤처나 중소기업에 돈을 더 많이 빌려줘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라는 요구다.독려를 넘어선 압박도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수장들을 불러 모아 보신주의 여신관행을 깨지 않을 경우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매월 금융사의 중기대출실적을 점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기술금융 등의 중소기업대출을 취급해 발생한 부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면책하고 해당 직원이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은행들을 지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정부가 잇달아 기술금융 확대 독려에 나서면서 실제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렸다.금융감독원이 발표한 ‘8월말 국내은행의 대출채권 및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이 상승한 가운데 특히 중소기업 연체율이 두드러졌다. 기업 대출 가운데 중소기업(1.30%)의 연체율이 대기업(0.74%)의 두 배에 달했고 한 달 동안의 상승폭(0.16%)도 대기업을 능가했다.그러나 문제는 부실대출이다. 대출의 양적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 방향에 질적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기술금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금융당국은 ‘모뉴엘 사태’와 기술금융과는 연관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모뉴엘과 관련해 기술금융과 엮어 정부가 기술금융을 너무 빠르게 추진해 부실 여신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며 “모뉴엘은 기본적으로 서류 조작 사기가 출발인 만큼 기술금융과 모뉴엘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기술금융의 독려가 제 2의 모뉴엘 사태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수적으로 여신을 운용해야 할 은행이 당국에 등을 떠밀리면서 각종 부작용도 가시화 되고 있다.실제 이미 가장 많은 기술신용평가(TCB) 기반 대출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은행의 경우 최근 국감에서 기존에 거래하던 우량기업들 가운데 기술등급이 낮은 중소업체들을 기술신용평가 기반 대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기술금융 실적을 부풀려 온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의 취지에 공감하고, 중장기적으로 확대 되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누가 더 대출을 많이 했는지를 확인해 압박하는 줄 세우기 식 대출 독려 정책이 이어질 경우 부실대출로 인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경우 어느정도 보수적으로 여신을 운용해야 하는데도 금융당국이 기술금융 실적을 실시간 점검하면서 은행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대출 독려 후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권에서 책임을 모두 지게 된 상황인 만큼 금융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