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두렵다”…움츠러드는 유리알 지갑들

경기 침체로 대기업·금융권에서 구조조정 한파 시작
대외변수와 내수경기 침체 겹치면서 ‘12월 위기설’도

2014-11-24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소자본 영화 ‘카트’와 케이블채널 드라마 ‘미생’의 흥행 돌풍이 매섭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우리네 월급쟁이의 현실이 생생하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직장인의 애환’이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된 배경에는 요새 직장인들의 무거운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내수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예전에는 성과급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을 연말연시에 구조조정을 걱정해야하는 시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노동조건 악화를 걱정해야하는 세태가 위로와 공감 그리고 연대를 말하는 소리에 공명했다는 말이다.영화 ‘카트’의 소재가 된 사건은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정리해고 사태인데, 7년이 지난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 각지에서 그때보다 더 길고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고 이러한 싸움의 당사자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있다.최근 사례만 봐도, 수도권 최대 종합유선 방송사인 씨앤엠(C&M) 하청업체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2명은 지난 12일부터 씨앤엠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 전광판에서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7월 해고된 씨앤엠의 5개 외주업체 노동자 100여 명의 복직과 고용보장 등이 이들의 요구이다. 지난 18일부터는 씨앤엠 정규직 노조도 전면 파업에 동참했다.또한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조도 각각 19일과 2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통신업계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노동환경 문제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비정규직 보다 상황이 낫다고 하지만 정규직들에게 이러한 비정규직들의 싸움이 강건너 불구경은 아닌 상황이다.우선, 대형 시중은행들은 연말연시를 전후로 대규모 인력감축에 나선다. KB국민은행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공식 취임을 계기로 대대적인 인적쇄신에 나설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KB국민은행은 신임 행장 시기와 맞물려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에 진행될 희망퇴직 규모가 직전과 비슷하거나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우리은행은 예년 수준인 400명가량을 희망퇴직·임금피크제 대상으로 분류, 내년 초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하나은행과의 통합을 앞둔 외환은행도 이달 말 59명을 특별퇴직으로 내보낸다. 올해 상반기와 합치면 113명으로 2011년(80명), 2012년(97명)보다 많다.신한은행 역시 2011년 230명, 2012년 150명, 지난해 160명을 희망퇴직을 실시한데 이어 올해 말 노사 합의를 거쳐 추가로 희망퇴직을 받을 방침이다.제조업계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인적·물적 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연말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실적이 부진한 고위 임원직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태다.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30대 그룹 251개 계열사의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 상반기말 기준으로 사장 직급자 수는 총 347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말 379명보다 8.4% 감소했다.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여파로 대기업 그룹들은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단행하면서 사장직을 대거 축소했다. 특히 신상필벌이 확실한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승진인사도 역대 최대 규모로 단행됐다.지난해 삼성전자에서 별을 단 신임 임원은 161명으로 철저한 성과주의 인사 원칙을 보여줬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와 상황이 정반대다. 그룹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대다수의 계열사에서 희망퇴직과 경영진단이 진행되고 있다.상반기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에서 진행된 희망퇴직은 최근 삼성카드로 이어졌다. 삼성카드는 지난 21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회사 전직 및 창업·재취업 휴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고 밝혔다.일각에서는 이번 전직지원이 인력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 이외에도 삼성SDI, 삼성전기 등과 같은 제조업 계열사들 역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경영진단을 받게 됐다.SK그룹도 그룹의 주력사업인 정유와 통신 등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대규모 인사가 예고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현재의 위기를 강력한 사업구조 혁신으로 극복하자는 의견이 나온 만큼 고강도 인적 구조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한화와 포스코도 연초에 실시하던 임원인사를 올해는 12월 말로 당겨서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3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최근 임원을 30% 이상 감원하는 인사를 단행했다.한편 경제계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와 미국 양적완화 종료에 따른 대외악재와 가계부채 심화에 따른 내수침체가 맞물리면서 올해 연말을 전후해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여러 지표를 볼 때 대외불안이 우리나라에 ‘위기’를 낳을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정설이긴 하지만, 1997년 말의 IMF 국가부도 사태가 한국 사회 분위기를 근본부터 바꿔놓았던 기억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위기설에도 괜스레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