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Y방정식] "기업 성패, 정부 정책과 不可分"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실패는 자산

2015-01-04     이상준 기자

[매일일보 이상준 기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

1960년대 금성사(지금의 LG전자)의 ‘골드스타’ 라디오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라디오의 케이스는 플라스틱으로 돼 있었는데, 락희화학(지금의 LG화학)이 만들어 공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발생했다. 남미로 수출한 1000대가 넘는 라디오의 케이스가 죄다 부서진 것이다. 라디오를 수입한 나라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그 일이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지면 ‘금성사 라디오는 모두 불량품’이라는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당시 구인회(고 연암(蓮庵)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회장은 우선 파손된 라디오 전량을 새것으로 바꿔 주기로 했다. 이어 구 회장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구인회 회장이 물었다. “금성사와 락희화학, 둘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요?”

금성사 쪽 전무가 말했다. “케이스가 깨진 것이니, 케이스를 만든 락희화학이 전적으로 잘못한 것입니다” 금성사 쪽 전무는 다름 아닌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현 LG그룹 명예회장)이었다.

그러자 락희화학 전무가 나섰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케이스가 아니라 포장이 잘못됐으니 책임은 금성사에게 있는 게지요”

금성사쪽 전무도 지지 않았다. “포장 문제라니, 누구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겁니까?”

두 전무의 싸움을 묵묵히 듣고 있던 구 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만들 하시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합시다. 두 사람 얘기는 충분히 들었으니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내일 발표하겠소.”

두 전무는 물론이고 두 회사 직원들 모두 회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까 궁금해 했다. “락희화학 쪽 전무는 회장님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니까 락희화학 편을 들어주실 거야” “무슨 소리야? 금성사 구 전무는 회장님 큰아들이잖아. 아버지가 아들 편을 들어 주는 게 당연하지” 모두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에 하루가 지났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회사 게시판에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인사발령을 알리는 방이 붙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두 전무 모두 부사장으로 승진시킨다. 그리고 금성사 전무는 락희화학으로, 락희화학 전무는 금성사로 옮겨 일한다.’

직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틀림없이 누군가는 잘못을 했을 텐데, 책임을 묻기는커녕 둘 다 승진을 시키다니.

구 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양쪽 다 내 탓이 아니라고 상대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마저 깨져 회사가 분열되고 말 것이다. 내가 두 전무를 승진시킨 것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라는 격려의 뜻이고, 소속을 맞바꾼 것은 입장을 바꿔 일을 해 보면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지에 그려 나가듯. 철학은 때로 그릇된 경험을 통해 쌓는 편견이나 선입관이 된다. 기업가가 철학을 가지면 독단과 독선으로 흘러 기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겐 철학이 없다. 기업에 철학이 있을 뿐. 백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 기업가는 신선한 사고력과 투시력을 가져야 한다. 기업은 항상 유연해야 한다. 경영시스템은 상황에 맞게 수정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제가 1975년 ‘섬유에서 석유까지’란 계획을 밝히자 모두 불가능하다 했다. 한데 매일 생각하고 있노라니 아이디어와 방법이 나왔다. 문제를 해결하려 분투 노력하다가 어느덧 목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실패는 자산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다 생기는 실수나 실패는 자산이다. 그것은 격려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업가의 소망. 기업가는 자신이 일으킨 사업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도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란다. (고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한국 기업은 무수히 실패해왔다. 단지 우리가 한국 기업의 성공 사례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경제의 성공 신화는 곧 한국 기업의 성공 신화다. 조금만 살펴봐도 성공 신화는 곧 실패 신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 재계의 창업자들도 숱한 실패에서 많은 걸 배웠고 끝내 실패를 극복했다.

창업기의 실패는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실패는 역부족 탓이었을 순 있어도 자기 과신이나 도덕적 해이나 탐욕이나 혁신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는 기업의 실패를 기꺼이 용인했다. 모두가 실패했고 어쩌면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실패해도 재기할 수도 있었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너무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기업이 성공을 거듭할수록 아무도 감히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게 됐다. 한국 기업들은 스스로를 성공 신화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참담한 실패 사례를 애써 지우고 성공하고 승리한 기록만 남기려고 애써왔다.

한국 기업도 실패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실패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기업의 실패를 기업 파산이나 매출 감소와 같은 말로 여긴다. 현대 기업의 실패는 그보다 더 복합적이다. 기술혁신에 실패할 수도 있다. 경영권 승계에 실패할 수도 있다. 사회적 책임을 마다할 수도 있다.

예전엔 기업이 실패하면 해당 기업만 망하면 그만이었다. 현대 기업 사회에선 기업의 실패가 곧 사회의 실패이며 국가 경제의 실패다.

매출이 증대되고 영업이익이 증가했다고 마냥 기업이 성공했다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기술 진화 속도를 억지로 늦췄다거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사회 전체에는 악영향을 끼쳤다면 성공이 아니라 실패다.

기업의 실패를 단지 재무제표 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경제학적인 분석틀 안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대주주 오너가 있는 기업도 실패할 수 있고 대주주 오너가 없는 기업도 실패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니까 삼성의 지배 체제가 최고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한국 기업의 성공이 한국 경제의 성공이었듯이 한국 기업의 실패엔 한국 사회의 실패와 한계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패는 정부의 기업 정책과 불가분이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3년 동안의 정책과도 연관돼 있다. 이제 국가 간 경쟁은 정부와 정부의 정면 대결이 아니다. 기업을 통한 대리전이다. 결국 더 진화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성공한 국가와 정부와 사회가 승리한다.